
■ 오늘의 질문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뉴스를 보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고,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 모든 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잠깐, 멈춰봅시다.
당신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압니다. 하지만 '안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설명할 수 있으십니까? 당신이 '안다'고 확신하는 것들(역사적 사실, 과학적 상식, 오랜 경험에서 쌓인 판단) 그것들은 과연 얼마나 확실한가요?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유희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결국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 생각의 실마리 :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철학에서 '지식'을 정의하는 가장 오래된 공식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그의 대화록 『메논』과 『테아이테토스』에서 제시한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인식론의 출발점으로 쓰입니다.
지식 = 정당화된 참된 믿음 (Justified True Belief)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째, 믿음(Belief)
당신이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안다"고 말하려면, 먼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지요. 믿지도 않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둘째, 참(Truth)
믿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굳게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지식이 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중세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지식이 되려면 그 믿음이 실제로 참이어야 합니다.
셋째, 정당화(Justification)
이것이 가장 흥미로운 조건입니다. 우연히 맞아떨어진 믿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일 주가가 오를 것이다"라고 직감으로 말했고, 실제로 올랐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지식이 되려면 왜 그것이 참인지에 대한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 그런데 이것만으로 충분할까요?
플라톤의 공식은 오랫동안 지식의 정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1963년, 미국의 철학자 에드먼드 게티어(Edmund Gettier)는 단 세 쪽짜리 짧은 논문으로 이 2,000년 된 정의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사례는 이렇습니다.
철수는 회사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대기실에는 열 명의 지원자가 있었고, 철수는 옆에 앉은 사람의 주머니에서 동전 열 개가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면접관은 "오늘 합격자는 주머니에 동전이 열 개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철수는 "주머니에 동전 열 개가 있는 사람이 합격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은 정당화되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합격자는 철수 자신이었고, 철수의 주머니에도 동전이 열 개 있었습니다. 철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몰랐던 것입니다.
정당화된 참된 믿음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지만, 우리는 이것을 온전한 '앎'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철수는 우연히 맞은 것이지요.
이것이 철학에서 유명한 '게티어 문제'입니다. 지식을 정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오늘날에도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철학자의 목소리
소크라테스 (기원전 470~399)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 유명한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내로라하는 정치인, 시인,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적어도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보다는 낫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지의 지(知)'입니다.
지식을 탐구하는 출발점은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라는 의심입니다.
르네 데카르트 (1596~1650)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만 남기기 위해,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거짓으로 간주하는 '방법적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감각은 우리를 속입니다. (눈의 착각, 신기루를 생각해보세요.) 수학도 완벽히 믿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악한 신이 내 계산을 방해한다면?) 꿈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심하다 보니, 데카르트는 한 가지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지금 의심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찾아낸 지식의 가장 단단한 첫 번째 벽돌이었습니다.

■ 우리 삶에서 보면
이 이야기가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지신다면, 우리 일상으로 가져와 봅시다.
"나는 그 사람을 안다."
우리는 가족도 알고, 오랜 친구도 알고, 좋아하는 작가도 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수십 년을 함께 산 배우자가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저 사람을 몰랐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았던 것은 그 사람의 일부였고, 우리의 기대와 해석이 뒤섞인 이미지였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역사를 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적 사실, 뉴스에서 접한 사건들 — 우리는 그것들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누군가의 시각으로 선택되고 기록된 것입니다. 같은 사건도 어느 나라의 교과서에 실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서술됩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가 진실의 전부는 아닐 수 있습니다.
"나는 경험으로 안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경험으로 안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경험은 분명 귀한 지식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경험은 동시에 편견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경험이 새로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가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경험에서 비롯된 '앎'도 끊임없이 점검이 필요합니다.
■ 지식의 종류를 잠깐 살펴보면
철학에서는 지식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이 구분을 알아두면 앞으로의 연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① 명제적 지식 (Propositional Knowledge / "that" knowledge)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처럼, 어떤 사실이 참임을 아는 것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지식'입니다.
② 절차적 지식 (Procedural Knowledge / "how" knowledge) 자전거 타는 법, 수영하는 법, 피아노 연주하는 법처럼, 어떻게 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몸이 기억하는 지식입니다. 아무리 자전거 타는 법을 책으로 읽어도, 직접 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지요.
③ 친숙의 지식 (Knowledge by Acquaintance) "나는 파리를 안다", "나는 그 고통을 안다"처럼, 직접 경험하거나 접촉함으로써 얻는 앎입니다. 파리를 가본 사람과 가보지 못한 사람이 파리에 대해 '아는' 방식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 세 가지 지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에 작동합니다. 이 연재는 주로 첫 번째 명제적 지식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도 중요한 순간마다 다시 등장할 것입니다.
■ 오늘의 지식 질문
당신이 '확실히 안다'고 생각하는 것 한 가지를 골라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그 앎의 근거는 충분히 단단한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했던 바로 그 질문입니다. 불편하지만, 이 불편함이 바로 지혜의 시작입니다.
■ 다음 회 예고
지식의 문을 열었으니, 이제 본격적인 첫 번째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EP.02 믿음과 지식은 어떻게 다른가
"나는 신을 믿는다"와 "나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는 어떻게 다를까요? 믿음은 지식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안다'고 확신하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사실은 '믿음'에 불과할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구독과 즐겨찾기로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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