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자들
당신은 오늘 몇 번이나 '그냥'이라고 했는가.
그냥 다들 하니까.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냥 뭐라고 하기 싫어서. 그냥 넘어갔다.
직장 동료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봤지만, 그냥 내 일이 아니니까. 오래된 친구가 조금씩 이상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냥 괜찮겠지. 마음속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다수가 하는 대로 따라갔다.
우리는 이것을 '신중함'이라고 부른다. 혹은 '현실적인 태도'라고.
단테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지옥의 문을 막 통과한 단테 앞에, 첫 번째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불 속에 있지도 않았다. 그냥 어둠 속을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벌거벗은 채로, 쉬지 않고, 목적 없이. 그리고 벌과 말벌 떼가 그들을 끊임없이 쏘았다. 얼굴에서 피와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것을 발밑의 벌레들이 받아먹었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에게 물었다.
"저들은 누구입니까? 저렇게 달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베르길리우스가 답했다.
"저들은 살아있을 때 선도 악도 선택하지 않은 자들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자들이다. 하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옥도 그들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죄인들조차 그들 옆에 있으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지옥도 거부한 자들.
단테는 이 대목에서 이름을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다.
신곡 전체를 통틀어 단테는 수많은 죄인들의 이름을 적었다. 역사 속 인물, 신화 속 영웅, 동시대 정치인들. 이름을 부르고, 사연을 들었다. 어떤 이에게는 동정을 느꼈고, 어떤 이에게는 분노했다.
하지만 이 무리에게는 단 한 명의 이름도 남기지 않았다.
기록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악인의 이름은 기억한다. 실패한 자의 이름도 기억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자의 이름은 —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단테가 내린 가장 차가운 판결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생긴다.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살인? 아니다. 배신? 아니다. 거짓말? 아니다. 그들은 그냥 —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그런데 단테는 이들을 지옥에서도 가장 먼저, 가장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왜일까.
단테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질은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을 선택하든 악을 선택하든, 그 선택 안에 인간의 존엄이 있다. 실패해도, 틀려도, 죄를 지어도 — 선택한 자는 자신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선택을 포기한 자는 삶을 살지 않은 것이다. 그저 존재했을 뿐이다.
숨만 쉬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
단테가 이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의 실루엣을 알아봤다는 해석이 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그가 '큰 거절'을 한 교황이라고 본다. 5세기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출됐지만, 교황직을 거부하고 조용히 은둔한 인물. 단테는 그를 비겁하다고 봤다. 세상이 그를 필요로 했을 때, 그는 자신의 평안을 선택했다.
능력이 있는 자의 침묵은 무능한 자의 침묵보다 더 무겁다.
단테가 살았던 시대는 혼란의 시대였다. 교회는 부패했고, 정치는 썩었고, 도시는 파벌 싸움으로 불탔다. 단테 자신은 그 싸움에 뛰어들었다가 추방당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
그래도 그는 선택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신곡이다.
다시 오늘로 돌아온다.
우리가 '중립'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생각해보자.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나는 그냥 내 삶이나 살 거야. 나는 어느 편도 아니야. 나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
물론 그 말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진짜 내면의 평화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소음에서 거리를 두는 지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테는 묻는다.
그것이 진짜 선택인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기 위한 선택인가.
내 삶에서 분명히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누군가에게 분명히 뭔가를 말해야 하는 순간에 — 그냥 모른 척 지나간 것은 아닌가.
침묵이 편안한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단테는 이 무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자."
그리고 빠르게 지나쳤다.
경멸도 동정도 없이. 관심조차 없이.
지옥에서 가장 무서운 판결은 불꽃이 아니었다. 고통도 아니었다. 아무도 당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 당신이 거기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않는 것.
그것이 단테가 내린 가장 냉혹한 선고였다.
당신은 오늘, 무언가를 선택했는가.
크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오래 미뤄온 결정을 내리는 것. 혹은 그냥 넘어가려던 순간에 딱 한 마디 하는 것.
선택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옳은 선택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틀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 이름을 걸고 선다는 것이다.
단테가 지옥을 통과한 것도 결국 그 선택 때문이었다. 두렵고, 자격도 없는 것 같고, 잘 모르겠지만 — 그래도 들어가겠다는 선택.
역사는 그 이름을 기억한다.
"그들을 보지 말고, 지나쳐라. 저들은 살았지만 살지 않은 자들이다." — 단테, 신곡 지옥편 제3곡
💡 다음 화 예고 EP.05 — 바람에 날리는 연인들 지옥에서 단테는 처음으로 쓰러진다. 살인자도, 배신자도 아닌 — 사랑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가장 인간적인 죄, 가장 아름다운 비극.
EP.01부터 04까지 흐름을 정리하면,
- EP.01 —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 EP.02 — 두렵지만 첫 발걸음을 떼는 것
- EP.03 — 진실 앞에 눈을 뜨는 것
- EP.04 — 삶에서 선택한다는 것의 의미
EP.05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편은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강렬한 에피소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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