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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세계문학 들여다 보기

카슨 매컬러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3. 17.

작가소개

카슨 매컬러스 (Carson McCullers, 1917~1967)


본명은 루라 카슨 스미스(Lula Carson Smith)입니다.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 카슨 매컬러스(Carson McCullers)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이름만 남편의 것을 빌렸을 뿐 그녀의 삶과 문학은 철저히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카슨이라는 이름은 중성적입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의도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 매컬러스라는 작가와 어울립니다. 그녀는 평생 경계 위에서 살았습니다. 남부와 북부 사이, 건강과 질병 사이, 사랑과 고독 사이.


조지아 주 콜럼버스, 남부에서 태어나다
매컬러스는 1917년 2월 19일, 미국 조지아 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레이니 스미스는 시계 수리공이었고, 어머니 마르가레타는 딸이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어린 매컬러스는 실제로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듯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매컬러스는 동시에 책을 사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같은 러시아 작가들에게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들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방식이 어린 매컬러스를 사로잡았습니다.
매컬러스는 콜럼버스에서 외로운 아이였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남부의 작은 도시에서 그녀는 언제나 약간 이질적인 존재였습니다. 그 외로움이 이후 그녀의 모든 작품에 스며들게 됩니다.


뉴욕으로, 피아노 대신 펜을 들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인 1934년, 매컬러스는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을 목표로.
그러나 뉴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음악원 등록금을 내기 위해 모았던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을 믿었다가 돈을 사기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지하철에서 분실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음악원 진학의 꿈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매컬러스는 뉴욕에 남았습니다. 낮에는 웨이트리스, 피아노 교사, 타이피스트 등 여러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밤에는 뉴욕 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었습니다.
피아노를 포기했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랑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글쓰기로. 음악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그녀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습니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미크 켈리가 음악을 꿈꾸는 가난한 소녀로 그려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리브스 매컬러스, 복잡한 결혼
1937년, 스물 살의 매컬러스는 제임스 리브스 매컬러스(James Reeves McCullers)와 결혼했습니다. 리브스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복잡했습니다.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건강하지 않았습니다. 매컬러스는 여성에게도 끌렸고, 리브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사람은 공공연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의존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했습니다. 리브스는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했고, 매컬러스의 초기 수입도 많지 않았습니다. 빈곤과 불화가 반복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1941년에 이혼했다가, 1945년에 재결합했습니다. 그러나 재결합 후에도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리브스는 알코올 중독이 심해졌고, 1953년 파리의 호텔 방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매컬러스에게 리브스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랫동안 그녀를 옭아매던 무언가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스물세 살의 기적,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1940년, 스물세 살의 매컬러스가 첫 소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발표했습니다.
이 소설은 발표 즉시 문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어떻게 스물세 살의 젊은 여성이 이토록 깊이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는가. 비평가들은 찬사를 쏟아냈습니다. 독자들도 열광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소설을 그해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매컬러스는 단숨에 미국 문학계의 새로운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매컬러스는 이 성공을 편안하게 즐기지 못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건강 문제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함께한 질병
매컬러스의 삶에서 질병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 류마티스 열을 앓았습니다. 이것이 심장을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이던 1947년, 첫 번째 뇌졸중이 왔습니다. 왼쪽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뇌졸중이 반복되었습니다. 몸의 왼쪽 반이 마비되었습니다. 걷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오른손 하나로, 나중에는 한 손가락으로 타자를 쳤습니다.
극심한 통증도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팔과 다리의 통증이 밤낮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진통제에 의존했고, 알코올도 고통을 잊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매컬러스는 썼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아니 허락하지 않아도 썼습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썼습니다. 그 의지가 그녀를 작가로 만들었고, 동시에 그녀를 더 빨리 소진시켰습니다.


브루클린 하이츠의 문학 공동체
1940년대, 매컬러스는 뉴욕 브루클린 하이츠의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 집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W.H. 오든, 리처드 라이트, 폴 볼스, 벤저민 브리튼. 이들이 같은 집 혹은 근처에 살면서 교류했습니다. 문학과 음악과 미술이 뒤섞이는 활기찬 공동체였습니다.
매컬러스는 이 공동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습니다. 재능 있고 대화가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의 날카로운 지성과 깊은 감수성이 빛났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매컬러스의 감정적 삶은 항상 복잡했습니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끌렸습니다.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그리고 그 감정이 종종 상대방을 압도했습니다. 매컬러스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이나 바넷,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매컬러스의 삶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적 집착 중 하나는 다이나 바넷(Dinah Baronet)이라는 여성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지식인 여성이었습니다.
매컬러스는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편지를 쓰고, 따라다니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넷은 그 감정에 같은 방식으로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매컬러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창작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매컬러스는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작품 안으로 녹여 넣었습니다.


주요 작품들이 탄생하다
첫 소설의 성공 이후 매컬러스는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1941년 두 번째 소설 『황금 눈에 반사된 것(Reflections in a Golden Eye)』을 발표했습니다. 미국 남부 군 기지를 배경으로 억압된 욕망과 폭력을 그린 소설입니다. 첫 소설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평가되었습니다.
1946년 『결혼식의 구성원(The Member of the Wedding)』은 매컬러스의 또 다른 대표작입니다. 열두 살 소녀 프랭키가 오빠의 결혼식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로, 소속감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이 소설은 1950년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도 공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매컬러스 자신이 각색했습니다. 연극은 2년 넘게 공연되며 극찬을 받았고, 여러 연극상을 수상했습니다.
1951년 『슬픈 카페의 노래(The Ballad of the Sad Café)』가 발표되었습니다. 사랑의 기이한 역학 관계를 그린 중편소설로, 매컬러스의 작품 중 가장 시적이고 우화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유럽에서의 시간, 그리고 외로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에 걸쳐 매컬러스는 여러 차례 유럽을 방문했습니다. 특히 파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파리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같은 프랑스 지식인들과 교류했습니다. 또한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매컬러스의 삶은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건강이 계속 나빠졌습니다. 리브스와의 관계도 악화일로였습니다. 그리고 1953년 파리에서 리브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매컬러스는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뉴욕 주 나이액(Nyack)의 어머니 집으로.


나이액의 마지막 세월
나이액의 집에서 매컬러스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어머니 마르가레타는 딸의 가장 충실한 지지자였습니다. 딸이 아플 때 곁에서 돌봤고, 딸의 글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기뻐했습니다.
1955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매컬러스에게 이것은 가장 큰 상실이었습니다. 어머니야말로 그녀의 가장 중요한 지지 기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매컬러스는 점점 더 나이액의 집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몸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글쓰기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61년 마지막 장편소설 『시계 없는 시간(Clock Without Hands)』을 발표했습니다. 인종 차별과 죽음을 주제로 한 소설입니다.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상태에서 완성한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 나날과 죽음
1967년 여름, 매컬러스는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47일 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67년 9월 2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0세.
그녀가 살았던 나이액의 집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많은 문학 순례자들이 그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주요 작품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The Heart Is a Lonely Hunter, 1940)』 데뷔작이자 대표작. 청각장애인 싱어를 중심으로 다섯 인물의 고독과 소통의 불가능성을 그렸습니다. 스물세 살에 쓴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깊고 성숙한 소설입니다.
『황금 눈에 반사된 것 (Reflections in a Golden Eye, 1941)』 미국 남부 군 기지를 배경으로 억압된 욕망과 그것이 폭발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 발표 당시보다 사후에 더 높이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결혼식의 구성원 (The Member of the Wedding, 1946)』 열두 살 소녀 프랭키의 성장 이야기. 소속감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담았습니다. 브로드웨이 연극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슬픈 카페의 노래 (The Ballad of the Sad Café, 1951)』 중편소설과 단편들을 묶은 작품집. 표제작은 사랑의 기이한 역학 관계를 우화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매컬러스의 가장 시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시계 없는 시간 (Clock Without Hands, 1961)』 마지막 장편소설. 인종 차별과 죽음을 주제로 합니다. 극도로 나빠진 건강 속에서 완성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더욱 인상적입니다.


매컬러스 문학의 특징

첫째, 고독을 가장 정확하게 그린 작가입니다. 매컬러스만큼 고독을 섬세하게, 그러나 감상적이지 않게 그린 작가는 드뭅니다. 그녀의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외롭습니다. 그 외로움이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매컬러스가 인간의 조건을 정확하게 포착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소속감에 대한 집착입니다. 매컬러스의 모든 작품에서 인물들은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합니다. 어떤 집단에, 어떤 관계에, 어떤 공동체에. 그러나 그 소속감은 언제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습니다. 매컬러스 자신이 평생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주제가 이토록 절실하게 그려집니다.
셋째,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지만 남부 문학에 갇히지 않습니다. 매컬러스는 조지아 주 출신이고 대부분의 작품이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래서 종종 '남부 고딕(Southern Gothic)' 문학으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주제는 인종 차별이나 남부의 특수성에 머물지 않습니다. 고독, 소통, 사랑, 소속감. 이것들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주제입니다.
넷째, 소수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입니다. 매컬러스의 작품에는 언제나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청각장애인, 흑인, 가난한 사람들, 성적 소수자, 신체적으로 다른 사람들. 매컬러스는 그들을 동정하거나 특별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그냥 인간으로 그립니다. 그 평등한 시선이 그녀 문학의 힘입니다.
다섯째, 음악적인 문장입니다. 피아노를 포기했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매컬러스의 문장에는 리듬이 있습니다. 반복과 변주가 있습니다.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리듬감. 그것이 그녀의 소설을 읽히게 만드는 비밀 중 하나입니다.


문학사에서의 위치

매컬러스는 종종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와 함께 묶입니다. 모두 미국 남부 출신이고, 모두 소외된 인물들을 그렸고, 모두 '남부 고딕'이라는 분류 아래 놓입니다.
그러나 세 작가는 각각 다릅니다.
오코너는 종교적 은총과 폭력을 다루고, 카포티는 화려하고 감각적이고, 매컬러스는 고독하고 서정적입니다.
영향을 주고받은 작가들도 있습니다. 매컬러스는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를 가장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매컬러스 이후 세대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토니 모리슨, 앤 타일러 등이 매컬러스의 영향을 인정했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처럼, 매컬러스 자신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남부에서 태어났지만 남부적이지 않았습니다. 여성이었지만 여성적인 것에 갇히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경계 위에 있었습니다. 미국인이었지만 유럽을 동경했습니다.
그 경계인의 감각이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작가로 만들었습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관찰자가 됩니다. 그 관찰에서 문학이 나왔습니다.
매컬러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다. 고독을 사랑하는 능력."

그녀는 고독을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독을 두려워했습니다. 언제나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이 그녀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고 있습니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작품의 큰 구조
배경: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 대공황의 그늘이 드리운 시절.
중심인물:

  • 존 싱어 — 청각장애인 남자. 말을 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인물
  • 미크 켈리 — 음악을 꿈꾸는 가난한 십대 소녀
  • 빌 브래논 — 카페 주인
  • 닥 코플랜드 — 흑인 의사
  • 제이크 블런트 — 급진적인 이상주의자

핵심 주제

  • 고독 — 모든 인물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외롭습니다
  • 소통의 불가능성 —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없다면
  • 꿈과 좌절 — 더 나은 삶을 원하지만 닿을 수 없는 사람들
  •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과 불평등

 

배경 이해 : 1930년대 미국 남부, 대공황의 그늘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의 한복판이었습니다. 주식 시장이 붕괴하고, 공장이 문을 닫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특히 미국 남부는 이미 가난했던 땅이 더욱 황폐해졌습니다.
그리고 남부에는 대공황과 별개로 오래된 상처가 있었습니다. 인종 차별. 흑인들은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백인과 다른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다른 세계였습니다.
매컬러스의 소설은 바로 이 시대, 이 도시의 이야기입니다. 가난하고, 차별받고, 꿈을 꾸지만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1부 : 모든 것의 시작

싱어와 안토나풀로스
이야기는 두 남자로 시작됩니다.
존 싱어(John Singer)와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Spiros Antonapoulos). 두 사람 모두 청각장애인입니다. 말을 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십여 년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이상합니다. 싱어는 총명하고 예민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반면 안토나풀로스는 뚱뚱하고 게으르며 자기 자신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싱어가 수화로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어도, 안토나풀로스는 건성으로 듣거나 딴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싱어에게 안토나풀로스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이 싱어의 삶의 의미입니다. 저녁마다 체스를 두고, 영화를 보러 가고, 조용히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싱어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안토나풀로스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해코지를 했습니다. 결국 안토나풀로스의 사촌이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싱어는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안토나풀로스가 떠났습니다.
싱어는 혼자 남겨졌습니다.

싱어는 그날부터 달라졌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언가가 사라졌다.

 

이 첫 챕터가 소설 전체의 구조를 설명합니다. 싱어는 안토나풀로스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안토나풀로스는 싱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후 소설에서 네 명의 인물들이 싱어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싱어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랑할 여유가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불균형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이 따로 있다.


미크 켈리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미크 켈리(Mick Kelly)입니다. 열세 살의 소녀로, 싱어가 하숙하게 된 집 켈리 가족의 딸입니다.
켈리 가족은 가난합니다. 아버지는 병들어 일을 제대로 못하고, 어머니는 하숙인들을 받아 겨우 생계를 꾸립니다. 미크는 여러 형제자매들 중 하나입니다. 학교도 다니지만, 가족을 돕기 위해 언제든 그만둬야 할 수 있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미크의 내면에는 불꽃이 있습니다. 음악. 미크는 음악을 사랑합니다. 악기를 배운 적도 없고, 악보를 읽을 줄도 모릅니다. 그러나 라디오에서 베토벤이 흘러나올 때, 미크는 온몸이 반응합니다. 언젠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습니다. 언젠가 위대한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꿈이 미크를 살게 합니다.
미크는 싱어에게 이상하게 끌립니다. 싱어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이 말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당신을 이해한다고.
미크는 싱어의 방 앞을 지날 때마다 멈추게 됩니다.
 

미크는 이 소설에서 꿈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망과,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가난한 현실. 그 사이에서 미크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빌 브래논
세 번째 인물은 빌 브래논(Biff Brannon)입니다. 도시의 뉴욕 카페를 운영하는 중년 남자입니다.
브래논의 카페는 하루 종일, 밤새도록 열려 있습니다. 이 도시의 온갖 사람들이 카페에 드나듭니다. 브래논은 그들을 조용히 관찰합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봅니다.
아내 앨리스가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냉랭합니다. 사랑이 없는 결혼입니다. 브래논도, 앨리스도 그것을 알면서 그냥 함께 삽니다.
브래논은 싱어를 카페의 단골손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싱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브래논은 이 남자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브래논은 이 소설에서 관찰자의 역할을 합니다.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과도 진심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 그의 카페가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지만, 정작 브래논 자신은 가장 외로운 사람입니다.


닥 코플랜드
네 번째 인물은 베네딕트 코플랜드(Benedict Copeland)입니다. 흑인 의사로, 이 도시의 흑인 커뮤니티에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코플랜드는 마르크스를 읽고, 칼 마르크스의 사상을 믿습니다. 흑인들이 단결하고, 교육받고,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이상과 너무 다릅니다. 가족들도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높은 기대에 못 미칩니다. 환자들은 교육보다 당장의 끼니가 급합니다.
코플랜드는 외롭습니다. 옳은 말을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사람의 외로움입니다.
그는 싱어를 만납니다. 싱어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싱어는 조용히 듣습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정말로 들어주는 것 같았다. 말을 못하는 사람이, 가장 잘 듣는 사람이었다.

 

코플랜드는 이 소설에서 인종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담당합니다. 그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그의 꿈은 옳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혼자 옳은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매컬러스는 코플랜드를 통해 보여줍니다.


제이크 블런트
다섯 번째 인물은 제이크 블런트(Jake Blount)입니다. 떠돌이 노동자로, 브래논의 카페에 처음 등장할 때 술에 취해 있습니다.
블런트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입니다.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미친 소리로 듣거나, 아예 무시합니다.
블런트는 취한 채로 싱어에게 자신의 생각을 쏟아냅니다. 세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노동자들이 얼마나 착취당하는지. 싱어는 듣습니다.
다음 날 블런트는 깨어나 싱어를 찾아갑니다. 어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이 남자가 궁금합니다.
 

블런트는 옳은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옳음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때,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블런트의 분노는 정당하지만, 그 분노가 그를 점점 소외시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싱어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이제 네 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이유로 싱어에게 끌려듭니다.
미크는 싱어의 방 앞을 지날 때마다 멈추고, 결국 문을 두드립니다. 싱어의 방에 앉아 자신의 음악 이야기를 합니다. 싱어는 조용히 듣습니다.
브래논은 싱어가 카페에 오면 특별히 신경을 씁니다. 싱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합니다. 말없이 챙깁니다.
코플랜드는 싱어를 방문하여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합니다. 흑인 해방운동에 대해, 자신의 좌절에 대해.
블런트는 술에 취할 때마다 싱어를 찾아와 세상의 부당함에 대해 말합니다.
네 사람 모두 싱어에게 자신의 가장 깊은 이야기를 합니다. 싱어는 모든 이야기를 듣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눈빛으로 반응하고, 메모를 적어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네 사람 모두 같은 착각을 합니다. 싱어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싱어가 자신의 편이라고. 싱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그러나 싱어는 그들에게 아무런 생각도 투영하지 않습니다. 싱어는 그냥 듣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사람들은 싱어에게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았다. 싱어는 거울이었다. 각자가 자신의 모습을 그 안에서 보았다.

 

이것이 이 소설의 핵심 구조입니다. 싱어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싱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한다고 착각합니다. 싱어가 침묵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침묵 안에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채워 넣습니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로 타인을 이해하는가, 아니면 타인 안에서 자신을 볼 뿐인가.


2부

 미크, 안쪽 방과 바깥쪽 방
미크 켈리는 자신의 내면을 두 개의 방으로 나눕니다.
안쪽 방(Inside Room)에는 음악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언젠가 자신이 만들어낼 멜로디들,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 아무도 침입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미크만의 세계입니다.
바깥쪽 방(Outside Room)에는 현실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 어린 남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책임, 학교, 그리고 돈 걱정. 이 방은 늘 시끄럽고 복잡합니다.
미크는 가능한 한 안쪽 방에 머물려 합니다. 저녁이 되면 동네를 혼자 걸으며 머릿속에서 음악을 재생합니다. 라디오 앞에 앉아 클래식 방송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립니다. 그 음악이 들릴 때 미크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느 날 미크는 오래된 피아노가 있는 학교 음악실을 발견합니다. 방과 후에 몰래 들어가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피아노. 그러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움직입니다. 소리가 납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것이 음악이었습니다.
미크는 그 음악실을 매일 찾아갑니다. 아무도 없을 때. 혼자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싱어의 방 앞을 지나칩니다. 문 앞에서 멈춥니다. 결국 문을 두드립니다.
싱어가 문을 엽니다. 조용히 미크를 안으로 들입니다.
미크는 싱어의 방에 앉아 음악 이야기를 합니다. 베토벤이 얼마나 위대한지, 자신이 언젠가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것. 싱어는 듣습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미크: "선생님은 제 말을 이해하시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그냥 웃거든요."

싱어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미크는 그 미소가 이해의 표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미크의 안쪽 방과 바깥쪽 방이라는 개념은 이 소설 전체의 핵심 은유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안쪽 방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열망. 그러나 현실은 계속 그 안쪽 방을 침범합니다. 미크의 이야기는 그 안쪽 방을 지키려는 싸움의 이야기입니다.

음악은 미크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브래논, 관찰하는 사람의 외로움
아내 앨리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한 주 동안 앓다가 그냥 가버렸습니다. 브래논은 그 죽음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슬픈지를 측정하려 합니다.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을 잃은 슬픔인지, 아니면 그냥 오래 함께한 무언가가 사라진 데서 오는 허전함인지 알 수 없습니다.
브래논은 카페를 혼자 운영합니다. 밤새도록 카페 문을 열어두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제 아내가 없으니 카운터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브래논의 관찰 능력은 비범합니다. 어떤 손님이 들어왔을 때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상태를 압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그러나 그 통찰이 그를 외롭게 만듭니다. 모든 것을 보는 사람은, 자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싱어가 카페에 들어옵니다. 늘 혼자,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십니다. 브래논은 싱어를 관찰합니다. 이 남자는 말을 못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끌리는 것일까. 브래논은 그 수수께끼가 궁금합니다.
어느 날 밤, 카페가 닫히고 혼자 남았을 때 브래논은 거울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얼굴을 오래 바라봅니다.

브래논: (속으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대답이 없습니다. 거울 속의 얼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브래논은 이 소설에서 가장 철학적인 인물입니다. 모든 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타인의 고독은 보이는데, 자신의 고독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아이러니가 브래논이라는 인물의 핵심입니다.


코플랜드, 분노와 사랑 사이
베네딕트 코플랜드 의사는 아침마다 마르크스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것이 그의 기도입니다. 종교 대신 사상이 그의 신앙입니다.
코플랜드의 진료실에는 매일 가난한 흑인 환자들이 찾아옵니다. 코플랜드는 그들을 치료하면서 항상 같은 말을 합니다.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높여야 한다고. 단결해야 한다고.
그러나 환자들은 그 말에 피곤해합니다. 당장 발이 아프고, 배가 고프고, 다음 달 집세가 걱정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높은 이상은 지금 당장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코플랜드에게는 자녀가 셋 있습니다. 딸 하나와 아들 둘. 코플랜드는 자녀들에게도 높은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들이 교육받고, 자신처럼 전문직을 갖고, 흑인 사회를 이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고 무섭다며 멀리했습니다. 코플랜드는 혼자입니다. 가족에게서도, 환자들에게서도.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곳은 싱어의 방입니다.

코플랜드: "나는 내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아요. 나는 분노합니다. 그런데 그 분노가 결국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릅니다."

싱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코플랜드는 싱어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느낍니다.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말이 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싱어는 그냥 듣고 있을 뿐입니다.
 

코플랜드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그러나 매컬러스는 그 정당한 분노가 어떻게 사람을 고립시키는지도 보여줍니다. 옳은 사람이 항상 사랑받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옳음이 외로움의 이유가 됩니다.


블런트, 씨앗을 뿌리는 사람
제이크 블런트는 놀이공원에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기계를 돌리고 관리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노동자들 사이에 있으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블런트는 쉬는 시간마다 동료들에게 말을 겁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노동자를 착취하는지, 왜 단결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몇몇이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블런트의 말이 길어지고 격렬해질수록, 사람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합니다.
블런트는 좌절합니다. 왜 그들은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것일까. 왜 착취당하면서도 분노하지 않는 것일까.
좌절할 때마다 술을 마십니다. 술을 마시면 싱어를 찾아갑니다.

블런트: "선생, 사람들이 왜 그런지 알겠소? 그들은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모르는 거요. 아무도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아서 그런 거요."

싱어는 블런트를 바라봅니다.

블런트: "선생만이 이해하는 것 같소. 선생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것 같소."

싱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블런트에게는 그 침묵이 동의처럼 느껴집니다.
블런트는 밤새 이야기를 하고 취해서 잠이 듭니다. 싱어는 그를 소파에 눕혀줍니다.
 

블런트의 좌절은 이상주의자의 보편적인 고통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바꾸려는 세상이 협력하지 않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블런트가 찾는 것은 이해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을 못하는 싱어에게서 그 이해를 찾습니다. 매컬러스의 날카로운 역설입니다.


싱어, 안토나풀로스에게 쓰는 편지
이 챕터는 소설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싱어가 안토나풀로스에게 편지를 씁니다. 보내지지 않을 편지일 수도 있지만, 싱어는 씁니다. 그것이 그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편지 안에서 싱어는 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싱어의 편지: "안토나풀로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 귀머거리인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겠지. 그러나 그들은 와서 이야기를 해. 몇 시간씩."

"미크라는 소녀는 음악을 사랑해. 그녀가 음악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빛나. 나는 그 눈빛이 좋아."

"의사 선생님은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러나 너무 많이 사랑해서 오히려 혼자가 된 것 같아."

"술꾼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해.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어."

"카페 주인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싱어는 씁니다.

"그들은 내가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해.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그냥 들을 뿐이야. 안토나풀로스, 나는 네가 보고 싶어. 네 옆에 앉아 있고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네 옆에 있고 싶어."

 

이 챕터가 소설 전체의 핵심입니다.
네 사람은 싱어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싱어의 편지를 보면, 싱어는 그들에 대해 관찰하고 있을 뿐입니다. 깊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싱어 자신은 안토나풀로스를 그리워합니다. 안토나풀로스는 싱어의 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싱어는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사랑은 이해가 아니다. 싱어는 안토나풀로스를 이해받아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옆에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네 사람도 싱어에게 이해받아서 좋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냥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해받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필요한 것인가.


미크, 부자 동네의 파티
미크는 부자 동네에서 파티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집에 피아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미크는 용기를 냅니다. 파티에 초대받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그 피아노를 한 번 쳐보고 싶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파티장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파티장에 들어서는 순간 미크는 자신이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드레스를 입은 부자 아이들. 반짝이는 조명. 풍성한 음식들. 미크의 옷은 초라했고, 아무도 그녀를 알지 못했습니다.
미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앞으로 향합니다. 건반을 만져봅니다.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심이 담긴 음악.
그러나 파티는 갑자기 끝납니다. 미크의 남동생이 동네 아이들과 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미크는 동생을 데리고 달아나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두운 골목에서 미크는 걷습니다. 파티의 음악 소리가 멀어집니다. 그러나 미크의 머릿속에는 피아노 건반의 감촉이 남아있습니다.
그날 밤 미크는 울지 않습니다. 그냥 누워서 천장을 바라봅니다.

미크: (속으로) "나는 반드시 피아노를 배울 것이다. 반드시."

 

이 장면은 계급의 벽을 보여줍니다. 미크는 음악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은 돈이 있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피아노 앞에 앉을 수는 있었지만, 그 세계에 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꿈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코플랜드, 아들 윌리의 비극
코플랜드에게 끔찍한 소식이 전해집니다. 군대에 간 아들 윌리가 심각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유는 인종 차별이었습니다. 군대 안에서도 흑인 병사들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윌리가 어떤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되었고, 그 처벌은 잔인했습니다. 발가락 여러 개를 잃었습니다.
코플랜드는 달려갑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을 봅니다. 아들의 발을 봅니다.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릅니다. 군에 항의하려 합니다. 법에 호소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남부 도시에서 흑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교육받은 의사라도.
코플랜드는 싱어를 찾아갑니다. 흔들리는 목소리로 윌리의 이야기를 합니다.

코플랜드: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같은 권리를 갖지 못합니다. 내 아들이 나라를 위해 군대에 갔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싱어는 코플랜드의 손을 잡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코플랜드는 그 손의 온기가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싱어가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이해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싱어는 그냥 손을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이 챕터는 인종 차별의 폭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폭력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코플랜드는 평생 자신의 민족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조차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력감이 그를 더욱 싱어에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블런트와 코플랜드의 만남
이 챕터는 소설에서 가장 긴장감 있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블런트와 코플랜드가 싱어의 방에서 처음으로 마주칩니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변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방식이 다릅니다.
블런트는 계급 투쟁을 말합니다.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고. 인종을 초월해서.
코플랜드는 흑인 해방을 말합니다. 흑인들이 먼저 스스로를 높여야 한다고.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점점 격렬해집니다.

블런트: "인종 문제는 계급 문제의 일부요. 흑인이 차별받는 것은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이고, 가난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 때문이오."

코플랜드: "그것은 절반의 진실입니다. 흑인이 차별받는 것은 단지 가난 때문이 아닙니다. 피부색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두 사람의 토론은 점점 날카로워집니다.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블런트가 욕설을 내뱉습니다. 코플랜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싱어는 두 사람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나간 후, 싱어는 빈 방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블런트와 코플랜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을 봅니다. 매컬러스는 이 장면을 통해 사회 변화의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같은 편이어야 할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침묵하는 싱어. 소통의 불가능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미크, 조금씩 무너지는 꿈
켈리 가족의 형편이 더욱 나빠졌습니다. 아버지의 병이 깊어졌고, 수입이 줄었습니다. 하숙인들에게서 받는 돈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미크의 오빠가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족의 부담을 더해줍니다. 새로운 식구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미크는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습니다. 음악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말합니다. 이제 당신도 일을 해야 한다고.
어머니가 미크에게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어머니: "미크, 네가 학교 다니면서 좋아하는 거 아는데. 그런데 지금 형편이 이렇잖니. 울워스 백화점에서 사람을 구한다더라."

미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날 밤 싱어의 방을 찾아갑니다.
미크는 말합니다.

미크: "선생님, 저는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아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싱어는 미크를 바라봅니다.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미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눈빛 안에서 미크는 용기를 얻습니다.

미크: "그래도 음악은 포기 안 할 거예요. 절대로."

 

꿈이 현실에 밀리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매컬러스는 이것을 극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로, 아주 조용하게. 그 조용함이 더 아픕니다. 꿈이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소리 없이 일어납니다.


브래논, 미크를 바라보다
브래논은 카페에 오는 손님들 중에서 미크를 자주 봅니다. 미크는 가끔 카페에 들어와 가장 싼 것을 주문하고 구석에 앉아 있습니다.
브래논은 미크를 관찰합니다. 이 소녀에게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눈빛이 다릅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의 눈빛.
브래논은 미크에게 특별히 신경을 씁니다. 주문하지 않은 과자를 슬쩍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미크는 의아해하면서도 받아먹습니다.
브래논은 왜 자신이 이 소녀에게 관심을 갖는지 생각합니다. 아이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아내도 없어졌습니다. 어쩌면 브래논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브래논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냥 미크를 보면 마음이 쓰인다는 것만 압니다.
 

브래논과 미크의 관계는 이 소설에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관계입니다. 직접적인 대화도, 뚜렷한 연결도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줍니다. 말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매컬러스는 이 두 인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코플랜드와 블런트, 다시 만나다
블런트가 코플랜드를 찾아옵니다. 지난번의 다툼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블런트는 술을 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흑인들에게 했던 말들을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코플랜드의 말이 옳은 부분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합니다.
두 사람은 이번에는 조금 더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전히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서로를 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블런트: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결국 같은 거 아니오? 더 공평한 세상."

코플랜드: "방법이 다릅니다. 그러나 목표는 같을 수 있겠지요."

두 사람은 악수를 합니다. 완전한 이해는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싱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블런트: "저 청각장애인 친구, 참 이상한 사람이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끌리는지."

코플랜드: "그것이 아마도 그 사람의 능력인지 모릅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블런트와 코플랜드의 화해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한 화해가 현실적입니다. 매컬러스는 완전한 이해나 완전한 화해가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싱어, 안토나풀로스를 만나러 가다
싱어는 매주 일요일 버스를 타고 안토나풀로스가 있는 정신병원으로 갑니다. 몇 시간을 가야 합니다. 혼자서 조용히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봅니다.
병원에 도착하면 안토나풀로스를 만납니다. 싱어는 수화로 열심히 이야기를 합니다. 한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미크의 음악 이야기, 코플랜드의 분노, 블런트의 열정, 브래논의 조용한 관찰.
안토나풀로스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창밖을 보거나, 음식을 먹거나, 딴 생각을 합니다. 싱어의 수화에 제대로 반응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나 싱어는 계속 이야기합니다. 안토나풀로스가 듣든 듣지 않든.
면회 시간이 끝나면 싱어는 돌아갑니다. 버스 안에서 다시 몇 시간. 도시로 돌아옵니다.
그 여정이 끝나고 나면, 싱어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습니다. 다음 일요일까지.

싱어가 네 사람에게 그러하듯, 싱어에게는 안토나풀로스가 그러했다. 실제로 이해받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챕터는 소설의 구조적 핵심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사랑과 의존의 연쇄. 네 사람이 싱어에게 의존하고, 싱어는 안토나풀로스에게 의존합니다. 그리고 안토나풀로스는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 비대칭적인 사랑의 연쇄가 이 소설의 슬픈 구조입니다.


미크, 일을 시작하다
미크는 결국 울워스 백화점에 취직했습니다. 학교를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일과 학교를 병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첫날, 미크는 온종일 서 있어야 합니다. 발이 아픕니다. 손님들의 요구를 들어야 합니다. 웃어야 합니다. 그것이 일이었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몸이 무겁습니다. 음악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날 밤 미크는 오래만에 싱어의 방을 찾아갑니다.

미크: "선생님, 저 오늘부터 일 시작했어요."

싱어는 미크를 바라봅니다.

미크: "괜찮아요. 그래도 음악은... 언젠가 다시..."

미크는 말을 끝맺지 못합니다. 싱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미크는 잠시 후 일어납니다.

미크: "갈게요.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해서."

싱어의 방을 나오면서 미크는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미크의 안쪽 방이 조용히 닫히기 시작합니다. 아직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열려있는 틈이 좁아졌습니다. 매컬러스는 이 순간을 슬프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여줍니다. 그것이 더 슬픕니다.


브래논, 새벽의 카페
새벽 두 시. 카페에 손님이 없습니다. 브래논 혼자 카운터에 앉아 있습니다.
브래논은 이 시간이 좋습니다. 조용하고, 아무도 없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난 몇 달을 돌아봅니다. 아내가 죽었습니다. 카페는 계속 운영됩니다. 싱어는 여전히 매일 저녁 카페에 옵니다. 미크는 가끔 구석에 앉아 있습니다. 블런트는 취해서 소란을 피우기도 합니다.
브래논은 생각합니다. 이 도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연결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싱어에 대해 생각합니다. 저 남자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네 사람이 그에게 모입니다. 왜일까. 브래논은 오래 생각합니다.
결론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냥 카페의 불을 켜둔 채로 새벽을 맞습니다.

브래논은 이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싱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브래논은 이 소설에서 가장 명석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 명석함이 그를 더 외롭게 만듭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부

 
안토나풀로스의 죽음, 싱어의 선택
봄이었습니다. 싱어는 언제나처럼 일요일에 버스를 타고 정신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간호사가 싱어를 맞이했습니다. 평소와 다른 표정이었습니다.
안토나풀로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전에. 신장 질환이었습니다.
싱어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도 말을 못하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수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도시로, 자신의 방으로.
며칠 동안 싱어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미크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브래논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싱어는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총소리가 났습니다.
싱어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방 안에서 싱어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주머니에는 안토나풀로스의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싱어의 죽음은 이 소설의 가장 충격적인 순간입니다. 그러나 매컬러스는 이것을 예고합니다. 안토나풀로스 없이 싱어는 살 이유가 없었습니다. 네 사람이 싱어에게 의존했듯, 싱어는 안토나풀로스에게 의존했습니다. 그 의존의 대상이 사라졌을 때, 싱어도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의존하는 사람이 사라질 때,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싱어가 보여주는 가장 무서운 질문입니다.


각자의 충격, 각자의 반응
싱어의 죽음이 알려졌습니다. 네 사람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전해졌습니다.
미크는 백화점에서 일하다가 소식을 들었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그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크는 혼자 울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미크는 생각했습니다. 싱어 선생님이 자신의 음악 꿈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이제 그 사람이 없습니다.
그날 밤 미크는 음악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안쪽 방의 문이 닫혔습니다. 조용히, 소리 없이.
다음 날 미크는 다시 백화점으로 출근했습니다. 손님에게 웃었습니다. 물건을 팔았습니다. 그것이 미크의 삶이 되었습니다.


브래논은 싱어의 죽음 소식을 카페에서 들었습니다. 카운터에 앉아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브래논은 싱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안토나풀로스가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싱어가 매주 일요일 어디를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브래논은 그것이 충격이었습니다. 그 남자를 오래 관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남자의 진짜 이야기를 하나도 몰랐다는 것이.

브래논: (속으로) "우리는 싱어가 우리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싱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코플랜드는 딸에게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코플랜드는 건강이 많이 나빠진 상태였습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싱어의 죽음이 슬펐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서는 다른 감정이 있었습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
코플랜드는 싱어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싱어가 그것을 이해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플랜드: (속으로) "그러나 착각이었다 해도, 그것이 나에게 힘이 되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블런트는 카페에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블런트는 싱어의 방을 찾아갔습니다. 이미 비어있는 방. 블런트는 그 방 앞에 서서 오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도시를 걸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네 사람의 반응은 각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싱어에게서 무언가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그 깨달음이 슬프지만, 동시에 해방이기도 합니다. 이제 자신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


무너지는 것들, 그리고 남는 것들
싱어의 죽음 이후 각 인물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집니다.
미크는 울워스 백화점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일을 하고, 퇴근합니다. 음악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 미크는 걸음을 멈춥니다. 잠깐. 아주 잠깐. 그리고 다시 걷습니다.
안쪽 방은 닫혔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봉인된 것은 아닙니다.


코플랜드는 딸의 설득으로 시골 친척 집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건강이 너무 나빠졌습니다. 도시에서의 활동을 계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짐을 싸면서 코플랜드는 자신의 책들을 봅니다. 마르크스, 더블린, 여러 사상가들의 책들. 이것들을 읽으며 꿈꾸었던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코플랜드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심어놓은 씨앗이 언젠가는 싹을 틔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지탱합니다.
시골로 떠나는 날 아침, 코플랜드는 오래 도시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돌아섭니다.


블런트는 놀이공원에서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쌓여온 인종 간의 갈등이 폭발했습니다.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블런트는 그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막으려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폭동 속에서 블런트는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소동이 가라앉은 후, 블런트는 도시를 떠납니다. 다음 도시로. 또 다른 노동자들을 찾아서. 또 다른 씨앗을 뿌리러.
그것이 블런트의 삶의 방식입니다. 떠나고, 또 떠나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브래논은 카페를 계속 운영합니다.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카페는 여전히 새벽까지 열려있고, 브래논은 여전히 카운터에 앉아 손님들을 바라봅니다.
다만 한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브래논은 이제 싱어의 자리를 다르게 봅니다. 싱어가 앉던 자리에 다른 손님이 앉습니다. 삶은 계속됩니다.



이 챕터는 싱어의 죽음 이후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극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삶은 그냥 계속됩니다. 미크는 일하러 가고, 코플랜드는 시골로 떠나고, 블런트는 다음 도시로 가고, 브래논은 카페를 엽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누군가를 잃어도, 무언가를 잃어도, 삶은 그냥 계속됩니다.


브래논, 새벽빛을 바라보다
소설의 마지막 챕터입니다.
새벽 이른 시간. 카페에 손님이 없습니다. 브래논 혼자입니다.
브래논은 카페 문 앞에 섭니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그 고요한 시간입니다. 하늘이 아직 어둡지만 첫 번째 빛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브래논은 그 빛을 바라봅니다.
지난 몇 달을 생각합니다. 아내의 죽음, 싱어의 죽음. 미크의 음악 꿈이 조용히 접히는 것을 지켜본 것. 코플랜드의 분노와 슬픔. 블런트의 지치지 않는 열정.
이 모든 것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왔습니다.
브래논은 생각합니다.

브래논: (속으로) "우리는 모두 외롭다. 이 도시의 모든 사람이. 그러나 아침은 온다. 매일."

브래논은 카페 안으로 들어갑니다. 커피를 끓이기 시작합니다. 곧 첫 번째 손님이 올 것입니다. 하루가 시작됩니다.
소설이 끝납니다.
 

이 마지막 장면이 이 소설 전체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매컬러스는 희망적인 결말을 주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미크의 음악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코플랜드의 해방운동은 아직 멀었고, 블런트의 혁명은 오지 않았고, 브래논은 여전히 외롭습니다.
그러나 아침은 왔습니다. 그것이 전부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매컬러스는 말합니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다. 그러나 그 사냥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주요 인물

존 싱어 (John Singer) : 중심축, 모든 것이 모이는 곳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공이라기보다 다른 인물들이 모여드는 중심점입니다.
청각장애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은세공사로 일하며 조용히 살아갑니다. 외모는 단정하고 깔끔합니다. 항상 말끔하게 차려입고, 표정은 침착합니다.
싱어의 가장 큰 특징은 존재 자체입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침묵이 사람들을 끌어당깁니다. 미크, 브래논, 코플랜드, 블런트. 네 사람 모두 싱어에게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각자 싱어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싱어가 실제로 그들을 이해하는지는 소설에서 명확하지 않습니다. 싱어는 그냥 듣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눈빛으로 반응하고, 메모를 적어 대화를 나눕니다. 그 행동들이 각 인물에게 다르게 해석됩니다. 미크에게는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코플랜드에게는 흑인 해방에 공감하는 사람으로, 블런트에게는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싱어 자신에게는 안토나풀로스가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 버스를 타고 몇 시간씩 가서 정신병원에 있는 안토나풀로스를 만납니다. 안토나풀로스는 싱어의 말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싱어는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 한 주를 버팁니다.
안토나풀로스가 세상을 떠나자, 싱어는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싱어의 죽음은 이 소설의 핵심 역설을 완성합니다. 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싱어가, 사실은 네 사람 중 누구에게도 깊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싱어의 전부는 안토나풀로스였고, 그 안토나풀로스가 사라지자 싱어도 사라졌습니다.

싱어를 한 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을 들은 사람.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 (Spiros Antonapoulos) : 싱어의 전부
소설의 첫 챕터에만 직접 등장하지만, 소설 전체에 그림자처럼 드리우는 인물입니다.
싱어처럼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리스계 이민자로, 사촌의 과일 가게에서 일합니다. 뚱뚱하고 게으르며, 자기 자신과 먹는 것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싱어와 십여 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싱어는 안토나풀로스를 열렬히 사랑합니다. 저녁마다 함께 체스를 두고, 영화를 보러 가고, 조용히 함께 앉아 있습니다. 싱어에게 그 시간이 삶의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안토나풀로스는 싱어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랑할 능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싱어가 수화로 열심히 이야기해도 건성으로 듣거나 딴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날부터 안토나풀로스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해코지를 합니다. 결국 사촌이 그를 정신병원에 보냅니다.
정신병원에서 안토나풀로스는 점점 살이 찌고 무기력해집니다. 싱어가 매주 찾아와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조용히 세상을 떠납니다.
안토나풀로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이 소설의 구조적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네 사람이 싱어에게 의존하듯, 싱어는 안토나풀로스에게 의존합니다. 그러나 안토나풀로스는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 비대칭적인 사랑의 연쇄가 소설 전체의 슬픈 구조를 만듭니다.

안토나풀로스를 한 줄로: 사랑받았지만 사랑하지 않은 사람, 그러나 그것이 그의 잘못은 아닌 사람.


미크 켈리 (Mick Kelly) : 꿈꾸는 소녀
열세 살의 소녀입니다. 싱어가 하숙하는 켈리 가족의 딸입니다.
가난한 집안입니다. 아버지는 병들어 일을 제대로 못하고, 어머니는 하숙인들을 받아 생계를 꾸립니다. 여러 형제자매들 중 하나로, 언제든 꿈을 포기하고 가족을 도와야 할 수 있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미크의 내면에는 불꽃이 있습니다. 음악. 미크는 음악을 사랑합니다. 악기를 배운 적도 없고 악보를 읽을 줄도 모릅니다. 그러나 라디오에서 베토벤이 흘러나올 때, 미크는 온몸이 반응합니다. 언젠가 피아노를 배우고, 언젠가 위대한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미크는 자신의 내면을 두 개의 방으로 나눕니다. 음악과 꿈이 있는 안쪽 방과, 가족과 현실이 있는 바깥쪽 방. 미크는 가능한 한 안쪽 방을 지키려 합니다.
싱어에게는 특별한 감정을 가집니다. 싱어의 방 앞을 지날 때마다 멈추게 되고, 결국 문을 두드립니다. 싱어의 방에 앉아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싱어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느낍니다.
소설의 끝에서 미크는 울워스 백화점에 취직합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을 위해 일합니다. 안쪽 방이 조용히 닫힙니다. 완전히 봉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전처럼 활짝 열려있지 않습니다.
미크의 이야기가 가장 슬픈 이유는 그 끝이 극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포기하는 순간이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일상 속에서, 어느새 꿈이 멀어집니다. 매컬러스는 그 조용한 포기가 얼마나 흔하고 얼마나 슬픈 것인지를 미크를 통해 보여줍니다.

미크를 한 줄로: 안쪽 방을 지키려 했지만 현실이 더 강했던, 수많은 미크들의 이야기.


빌 브래논 (Biff Brannon) : 관찰하는 사람
중년의 남자로 도시의 뉴욕 카페를 운영합니다. 하루 종일, 밤새도록 카페를 엽니다. 이 도시의 온갖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브래논의 가장 큰 특징은 관찰력입니다. 어떤 손님이 들어와도 그 사람의 상태를 압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그 예리한 시선이 그를 훌륭한 카페 주인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외롭게 만듭니다. 모든 것을 보는 사람은 자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내 앨리스와 오랫동안 함께 살았지만 사랑이 없는 결혼이었습니다. 앨리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브래논은 자신이 얼마나 슬픈지를 측정하려 합니다. 슬픔이 있지만 그것이 사랑을 잃은 슬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더 슬픕니다.
브래논은 미크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집니다.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주문하지 않은 과자를 슬쩍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아이가 없는 브래논에게, 음악을 꿈꾸는 이 소녀가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브래논의 시점으로 끝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새벽빛을 바라보며 커피를 끓이는 브래논. 모든 것을 잃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가장 조용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브래논은 이 소설에서 가장 철학적인 인물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깊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독자에게 소설의 주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브래논을 한 줄로: 모든 것을 보지만 자신을 보지 못하는, 가장 외로운 관찰자.


베네딕트 코플랜드 (Benedict Copeland) : 분노하는 이상주의자
흑인 의사입니다. 이 도시의 흑인 커뮤니티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교육받고 지적이며 원칙이 강합니다.
코플랜드는 마르크스를 읽고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을 믿습니다. 흑인들이 단결하고 교육받고 스스로를 높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매일 아침 마르크스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그의 기도입니다.
문제는 그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입니다. 환자들에게 교육을 강조하면, 환자들은 당장의 끼니가 더 급합니다. 자녀들에게 높은 기대를 가졌지만, 자녀들은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고 무섭다며 멀리했습니다. 코플랜드는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아들 윌리가 군대에서 인종 차별적인 처벌로 발가락을 잃는 비극이 찾아옵니다. 코플랜드는 분노합니다. 법에 호소하려 하지만 이 남부 도시에서 흑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코플랜드가 싱어를 찾아가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그는 싱어에게서 동지를 봅니다.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는 사람을 봅니다. 싱어가 실제로 그런지와 상관없이, 그 믿음이 코플랜드에게 힘을 줍니다.
소설의 끝에서 코플랜드는 건강이 나빠져 시골로 떠납니다.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 믿음 자체가 그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코플랜드를 한 줄로: 옳은 말을 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아, 가장 정당한 방식으로 외로운 사람.


제이크 블런트 (Jake Blount) : 지치지 않는 이상주의자
떠돌이 노동자입니다. 브래논의 카페에 처음 등장할 때 술에 취해 있습니다. 덩치가 크고 거칠어 보이지만, 그 안에 강렬한 신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입니다.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그의 종교이고 사명입니다. 가는 곳마다 그 생각을 전파하려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미친 소리로 듣거나 아예 무시합니다. 좌절할 때마다 술을 마십니다. 술을 마시면 싱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취한 채로 자신의 생각을 쏟아냅니다.
블런트가 싱어에게 끌리는 이유는 싱어가 침묵하기 때문입니다. 그 침묵을 블런트는 동의로 해석합니다. 반박하지 않으니 동의하는 것이라고.
코플랜드와의 관계가 흥미롭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에 격렬하게 충돌합니다. 블런트는 계급 문제를 말하고, 코플랜드는 인종 문제를 말합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국 불완전하게나마 화해합니다.
소설의 끝에서 블런트는 놀이공원에서 폭동을 겪고 다시 도시를 떠납니다. 다음 도시로, 또 다른 씨앗을 뿌리러. 포기하지 않는 것이 블런트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그를 비극적이지 않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블런트를 한 줄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세상이 협력하지 않아, 계속 떠돌 수밖에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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