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1882~1941)
생애
제임스 어거스틴 앨로이시어스 조이스는 1882년 2월 2일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의 래스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존 스태니슬로스 조이스는 술을 좋아하고 허세가 강했으며, 재산을 조금씩 탕진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덕분에 조이스의 어린 시절은 잦은 이사와 경제적 불안으로 얼룩졌습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스티븐 디덜러스 가족이 겪는 몰락이 바로 조이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더블린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현대 언어를 전공했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며, 입센과 플로베르 같은 유럽 작가들에 열광했습니다.
1904년, 스물두 살의 조이스는 노라 바나클이라는 여성을 만납니다. 노라는 아일랜드 서부 출신의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조이스는 그녀에게 평생 깊이 의존했습니다. 그해 두 사람은 아일랜드를 떠나 유럽으로 향합니다. 트리에스테, 취리히, 파리를 전전하며 살았고, 조이스는 평생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작품은 아일랜드, 그 중에서도 더블린을 배경으로 합니다. 고향을 버리고 떠났지만, 평생 고향을 쓴 작가였습니다.
말년에는 심각한 눈 질환으로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고, 수십 차례의 안과 수술을 받으며 글을 썼습니다. 1941년 1월, 취리히에서 십이지장궤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8세였습니다.
주요 작품
『더블린 사람들』 (Dubliners, 1914)
조이스의 첫 번째 주요 작품으로,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15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 더블린 시민들의 삶을 날카롭고 건조한 시선으로 포착합니다. 조이스가 이 작품에서 사용한 핵심 개념이 바로 '에피파니(epiphany)'입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순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진실이 섬광처럼 드러나는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이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방식입니다. 마지막 단편 「죽은 사람들(The Dead)」은 단편소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1916)
조이스 자신의 성장 과정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입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사용한 작품으로,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가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되어 아일랜드를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20세기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율리시스』 (Ulysses, 1922)
조이스의 대표작이자 20세기 문학의 가장 위대한 소설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더블린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구조를 현대 더블린에 겹쳐놓은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인간 내면의 모든 층위를 탐구합니다. 출판 당시 외설 논란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금서가 되었지만, 현재는 세계 문학의 정전 중 정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워낙 난해하여 "율리시스를 읽었다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 읽은 사람은 드물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 1939)
조이스의 마지막 작품이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소설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무려 17년에 걸쳐 집필했습니다. 영어를 기반으로 하되 수십 개의 언어를 뒤섞어 만들어낸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쓰여 있습니다. 꿈의 논리를 따르는 이 소설은 명확한 줄거리가 없으며, 전문 연구자들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주장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조이스는 이 책에 대해 "이상적인 독자라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평생을 바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이스가 문학사에서 중요한 이유
조이스 이전과 이후, 소설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의 완성. 인간의 내면은 논리적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생각은 기억과 감각과 감정이 뒤섞인 채 흘러갑니다. 조이스는 소설이 그 흐름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기법은 이후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사뮈엘 베케트 등 20세기 위대한 작가들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언어 자체를 예술의 재료로 삼은 것. 조이스에게 언어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투명한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단어의 소리, 리듬, 다의성, 여러 언어 사이의 연결. 이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그는 언어를 조각가가 돌을 다루듯이 다루었습니다.
인간의 평범한 하루가 위대한 서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 『율리시스』는 단 하루의 이야기입니다. 영웅도, 전쟁도, 극적인 사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인간 존재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조이스라는 인간
작가로서의 조이스는 위대했지만, 인간으로서의 조이스는 복잡했습니다.
극도로 자기중심적이었고,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평생 지인들에게 빌붙어 살았습니다.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실비아 비치 같은 문학계 인사들이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습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지만, 출판사들의 거절과 검열로 인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딸 루치아가 정신분열증을 앓았고, 조이스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말년을 가장 깊이 괴롭힌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라에 대한 사랑만큼은 한결같았습니다. 평생을 함께했고, 죽기 전 취리히에서 뒤늦게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조이스가 세상을 떠난 후, 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이가 천재였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몰랐어요."

『젊은 예술가의 초상』줄거리
1장
장면 1 : 세상에서 가장 이른 기억들
스티븐 디덜러스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순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아기 스티븐을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옛날 옛날에, 무스코우라는 소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얼굴은 크고 수염이 덥수룩했고, 눈은 유리구슬처럼 반짝였습니다.
아기였던 스티븐에게 세상은 아직 '의미'가 아니라 '감각'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냄새는 아버지의 냄새와 달랐습니다. 어머니 냄새는 달콤하고 부드러웠고, 아버지 냄새는 거칠고 남성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를 때, 어린 스티븐은 그 소리가 너무 슬퍼서 그만하라고 울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연주를 멈추고 아이를 안아주었지요.
스티븐은 눈이 좋지 않아 늘 안경을 써야 했습니다. 세상이 흐릿하게 보이는 만큼, 그는 다른 감각들 — 소리, 냄새, 촉감, 말의 리듬 — 에 더욱 예민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소리가 스티븐에게는 그 뜻만큼이나 중요했습니다.
장면 2 : 기숙학교에 오다
클롱고우즈 우드 칼리지는 아일랜드의 명문 예수회 기숙학교입니다. 부유한 가톨릭 집안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스티븐의 아버지 사이먼은 아들을 이 학교에 보냄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려 했습니다. 스티븐은 이 무렵 여섯 살에서 일곱 살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스티븐은 부모님과 함께 기차를 타고 기숙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낯선 건물, 낯선 아이들, 낯선 냄새. 부모님은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갔고, 스티븐은 혼자 남겨졌습니다.
학교의 운동장은 넓고 시끄러웠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소리를 질렀지만, 스티븐은 그 무리 속에 쉽게 끼어들지 못했습니다. 체구도 작고 안경을 끼었으며, 무엇보다 이 세계의 규칙을 아직 몰랐습니다.
급우 중에 로디 킥햄은 붙임성이 좋고 학교에서 이미 인기가 있었습니다. 반면 웰스라는 아이는 거칠고 못되게 구는 아이였습니다. 웰스는 스티븐에게 비열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웰스: "야, 너 어머니한테 키스해? 아니면 안 해?"
스티븐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다"고 해도, "안 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비웃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한다"고 대답했다가 아이들이 웃자 "안 한다"고 바꿔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웃었습니다. 어떤 대답도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스티븐은 그 웃음의 의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장면 3 : 오물 구덩이와 열병
어느 날 오후, 운동장에서 웰스는 갑자기 장난처럼 스티븐을 오물이 고인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스티븐은 차갑고 더러운 물 속에 빠졌습니다. 몸이 흠뻑 젖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그는 혼자 기어 나왔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부터 스티븐은 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열이 났고, 결국 학교 병실에 눕게 되었습니다. 차가운 이불 속에서 스티븐은 집을 그리워했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가족의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병실은 조용했습니다. 스티븐은 열 속에서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장례식이 열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올 것이다. 슬프게 울겠지. 나는 검은 관 속에 누워 있겠지…'
그러다 문득, 어른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어떤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파넬(Parnell). 그 이름과 함께 죽음의 이미지가 겹쳐졌습니다. 스티븐은 파넬이 누구인지 아직 잘 몰랐지만, 그 이름 주위에는 언제나 슬픔과 분노가 맴도는 것 같았습니다.
파넬은 누구인가? 찰스 스튜어트 파넬(1846~1891)은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영웅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불륜 스캔들이 드러나면서 가톨릭 교회가 그를 버렸고 지지자들도 분열되었습니다. 파넬은 실의 속에 1891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아일랜드인들은 그의 죽음을 교회의 배신이 만들어낸 비극으로 여겼습니다.
장면 4 : 크리스마스 만찬, 식탁이 전쟁터가 되다
겨울 방학이 되어 스티븐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크리스마스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아버지 사이먼 디덜러스, 어머니, 아버지의 친구 존 케이시 씨, 그리고 오랫동안 집안에서 가정교사 겸 식객으로 지내온 단 리오던 아줌마.
처음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칠면조 요리가 나오고, 어른들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티븐은 어른들 틈에 앉아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이런 자리에 함께 앉게 된 것이 처음이라 마음이 설레고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파넬로 옮겨가자 분위기가 급변했습니다.
사이먼·케이시: "파넬은 아일랜드가 낳은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소. 교회가 그를 죽인 거요. 주교들이, 신부들이 강단에서 그를 저주하지 않았소? 정치에 코를 들이밀어 위대한 사람을 망친 게 바로 그 신부들이라고!"
단 리오던 아줌마: "무슨 소리요! 파넬은 간통을 저지른 죄인이에요. 교회가 그를 규탄한 건 당연한 일이야. 하느님의 법을 어긴 자를 우리가 지도자로 받들 수는 없어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단 리오던 아줌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케이시 씨는 주먹으로 식탁을 쳤습니다. 어머니는 불안한 눈빛으로 어른들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결국 단 리오던 아줌마는 냅킨을 내팽개치듯 내려놓고 식탁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방문이 쾅 닫혔습니다.
그 순간, 케이시 씨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른이 우는 소리였습니다. 아버지 사이먼도 눈을 붉히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케이시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가여운 파넬! 내 죽은 왕이여!"
스티븐은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두 어른을. 아이는 이 슬픔의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식탁 위에서,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짊어진 종교와 정치의 갈등이 얼마나 깊고 아프고 오래된 것인지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장면 5 : 억울한 체벌, 팬딩 사건
방학이 끝나고 스티븐은 다시 기숙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스티븐은 안경이 부러져 칠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였고, 그래서 필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학생 지도를 담당하는 돌런 신부가 교실을 순찰하러 들어왔습니다. 돌런 신부는 냉정하고 엄격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티븐의 공책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돌런 신부: "왜 쓰지 않았느냐? 게으름을 피우는 거냐?"
스티븐: "신부님, 안경이 부러져서 칠판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런 신부: "핑계를 대지 말아라. 손을 내밀어라."
돌런 신부는 가죽 체벌 도구로 스티븐의 손바닥을 세게 내리쳤습니다. 한 번, 두 번. 손바닥이 불처럼 타올랐습니다. 스티븐은 눈물을 참았습니다.
돌런 신부가 나가고 나서도 손바닥의 통증보다 억울함이 더 크게 남아 있었습니다. 급우들이 스티븐에게 속삭였습니다.
급우들: "교장 신부님한테 가서 말씀드려. 코니 신부님은 다르셔. 들어주실 거야."
장면 6 : 교장실을 두드리다, 스티븐의 첫 번째 저항
스티븐은 긴 복도를 걸어갔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교장실 문 앞에 서서 잠시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교장 코니 신부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온화한 눈빛의 노신부였습니다. 스티븐은 떨리는 목소리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안경이 부러진 것, 그래서 칠판이 보이지 않았던 것, 그런데도 체벌을 받은 것. 코니 신부는 끝까지 조용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코니 신부: "알았다. 돌런 신부에게 내가 직접 이야기하마. 돌아가거라."
스티븐이 교장실을 나와 복도를 걸을 때, 기다리던 급우들이 몰려와 환호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그 순간, 스티븐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조금 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작지만 진짜 중요한 일을 해낸 것 같은 느낌.
옳지 않은 일에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두려워도. 상대가 어른이어도. 그것이 올바른 일이니까.
1장을 읽고 나서
1장은 스티븐 디덜러스가 세상을 처음으로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어리고 힘없는 아이지만, 이미 남들과 다른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웰스에게 밀려 구덩이에 빠지는 사건에서는 세상의 폭력과 부당함을 처음 경험하고, 크리스마스 만찬의 충격적인 어른들의 싸움에서는 종교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갈등이 얼마나 사람들을 갈라놓는지를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팬딩 사건과 교장실 방문에서는 처음으로 부당한 권위에 혼자 맞서는 경험을 합니다.
이 세 가지 경험 — 폭력, 갈등, 저항 — 이 1장의 뼈대를 이루며, 이후 스티븐이 가족도, 종교도, 민족도 모두 뒤로하고 오직 예술가로서 홀로 서는 긴 여정의 씨앗이 됩니다.
2장
장면 1 : 블랙록에서의 여름, 몽상과 달리기
클롱고우즈를 떠난 스티븐은 한동안 더블린 근교의 블랙록이라는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기숙학교 학비를 낼 형편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 스티븐에게 그 여름은 의외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스티븐은 큰아버지 찰스와 함께 공원을 달렸습니다. 찰스 큰아버지는 나이가 많고 느렸지만 언제나 씩씩하게 걸었고, 스티븐은 그 곁에서 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달리고 나면 둘은 가게에 들러 심부름을 하고, 길가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후에는 스티븐 혼자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다락방 같은 조용한 구석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습니다. 특히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여 화려하게 복수하는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의 이야기는 스티븐의 상상력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스티븐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그 이야기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자신도 언젠가는 이 평범하고 답답한 세상을 떠나, 먼 곳에서 멋지고 고귀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속에는 늘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뚜렷하지 않은 그 여인을 스티븐은 마음속으로 '메르세데스'라고 불렀습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나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것이다. 그리고 먼 곳 어딘가에서, 메르세데스 같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때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나와 같지 않을 것이다.
장면 2 : 가족의 몰락, 더블린으로 이사
그러나 현실은 낭만적인 꿈과 달리 냉정하게 흘러갔습니다. 아버지 사이먼 디덜러스의 재정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허세가 강했던 아버지는 사업 수완이 없었고, 재산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가족은 블랙록의 집을 떠나 더블린 시내로 이사해야 했습니다.
이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형편이 나빠질수록 이사하는 집은 점점 더 좁아지고, 동네는 점점 더 허름해졌습니다. 짐을 싸고 또 풀고, 또 싸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가구는 줄어들고, 밥상은 가난해졌습니다.
스티븐은 이 모든 변화를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였습니다. 한때 우러러보던 아버지가 점점 무너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 상황을 만든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은 그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속으로 삭이며, 더욱 자기 내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계속 이사를 다녀야 하는가. 아버지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언젠가 끝날 것이다. 나는 반드시 이곳을 벗어날 것이다.
장면 3 : 벨베데레 칼리지, 새로운 학교
한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하던 스티븐은 이윽고 더블린의 벨베데레 칼리지에 입학하게 됩니다. 역시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였지만, 클롱고우즈와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통학 학교였고, 학생들의 사회적 배경도 더 다양했습니다.
스티븐은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글쓰기와 문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선생님들의 눈에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상금으로는 꽤 큰 금액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은 이 성공에서도 완전한 기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급우들과 어울리면서도 어딘지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늘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아이들은 스티븐을 인정했지만, 그는 그들과 진심으로 친밀해지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연극 공연이 열렸습니다. 스티븐은 배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습니다.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 서는 경험은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후, 분장을 지우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스티븐은 묘한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잠깐 다른 사람이 되어보았다가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의 어색함과 허전함을.
관객석에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에밀리라는 이름의, 스티븐이 마음속으로 몰래 좋아하던 소녀였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그 소녀가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 스티븐은 얼굴이 붉어지며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소녀는 곧 자리를 떠났고, 스티븐은 오랫동안 그 짧은 순간을 되새겼습니다.
장면 4 : 상금을 쓰다, 잠깐의 호사
글쓰기 대회에서 받은 상금이 손에 들어왔을 때, 스티븐은 한동안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그 돈을 가족을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께 선물을 사드리고, 동생들에게도 뭔가를 사주고, 온 가족이 함께 외식도 했습니다.
스티븐은 잠깐이나마 집안에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아직 형편이 괜찮았던 시절의 기억처럼. 그러나 상금은 금세 바닥났습니다. 며칠 간의 호사가 끝나자 집안은 다시 원래의 팍팍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스티븐은 묘한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돈으로는 그 시절의 분위기를 살 수 없다. 따뜻함은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장면 5 : 코크 여행, 아버지와 함께
어느 날, 아버지 사이먼이 스티븐을 데리고 코크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코크는 아버지의 고향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부동산을 정리하기 위한 실무적인 여행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을 보낸 도시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까요.
기차 안에서 아버지는 들뜬 기분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젊었을 때의 친구들, 재미있었던 사건들, 자신이 얼마나 활달하고 인기 있는 청년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스티븐은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마음속은 복잡했습니다.
아버지는 과거 속에 살고 있다. 그 시절의 자기 자신을 그리워하면서, 지금의 현실은 보지 않으려 한다.
코크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옛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습니다. 스티븐도 자리에 함께했지만, 어른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사이먼이 어떤 청년이었는지 이야기하며 웃었고, 아버지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스티븐은 그 광경을 보며 처음으로 뚜렷하게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상상해온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이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음 날, 아버지는 스티븐을 데리고 자신이 다녔던 퀸스 칼리지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오래된 강의실과 복도를 거닐며 추억에 젖었습니다. 스티븐도 함께 걸었습니다.
그때 스티븐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습니다. 낡은 강의실 책상 위에 칼로 새겨진 단어였습니다.
FOETUS(태아)
누군가 오래전에 새겨놓은 그 단어를 바라보는 순간, 스티븐의 머릿속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단어 하나가 갑자기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건드렸습니다. 자신의 몸, 욕망, 수치심, 그리고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어두운 충동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저 단어를 새긴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도 나처럼 이 답답함 속에서,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던 것일까. 내 안에는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거기에 있다.
아버지는 그 사이에도 계속 혼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티븐은 멍하니 그 단어를 바라보다가,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거리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스티븐, 너도 나중에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냐? 나는 여기서 정말 좋은 시절을 보냈단다."
스티븐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도, 이 학교도, 아버지의 추억도,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장면 6 : 밤의 거리, 스티븐의 방황
더블린으로 돌아온 후, 스티븐은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습니다. 책을 읽어도, 공부를 해도, 그 감각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욕망이었습니다. 아직 이름 붙이기 어려운, 그러나 강렬한 욕망. 스티븐은 그것을 처음에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낭만적인 꿈으로 승화시키려 했습니다. 마음속의 메르세데스를 떠올리며, 언젠가 만날 고귀한 사랑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그 상상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점점 더 어두운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스티븐은 그 욕망과 싸웠지만,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스티븐은 혼자 더블린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걷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거의 자신도 모르게 도시의 어두운 골목 쪽으로 향했습니다. 가스등이 흐릿하게 켜진 좁은 골목, 낯선 냄새, 낯선 소리들.
스티븐은 두려웠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의 무언가가 그를 앞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장면 7 : 첫 번째 만남, 무너지는 밤
골목 안쪽에서 한 여인이 스티븐에게 다가왔습니다. 화장을 진하게 한 젊은 여인이었습니다. 스티븐은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스티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말을 걸었습니다. 스티븐은 굳어 있었습니다. 온몸이 떨렸습니다. 두려움인지, 흥분인지, 수치심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였습니다.
여인이 고개를 기울여 스티븐의 뺨에 입을 맞췄습니다.
그 순간, 스티븐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래 쌓아온 무언가 — 두려움, 수치심, 억압 — 가 한꺼번에 허물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이것이 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감각만이 진짜인 것 같다. 학교도, 신부님도, 아버지도, 아무것도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티븐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방,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 그러나 스티븐 자신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넘어버린 사람처럼. 그리고 그 넘어섬이 자신을 구원으로 데려갈지, 나락으로 데려갈지, 아직은 알 수 없었습니다.
2장을 읽고 나서
2장은 스티븐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경계를 그립니다. 이 장에서 스티븐을 움직이는 힘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몰락입니다. 가족의 경제적 붕괴를 지켜보면서 스티븐은 '아버지의 세계'가 자신이 기댈 수 없는 세계임을 깨닫습니다. 코크 여행에서 느끼는 아버지와의 거리감은 그 절정입니다.
둘째는 고독입니다. 학교에서 인정받고 상도 받지만, 스티븐은 어디에서도 진심으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는 늘 약간 바깥쪽에 서 있습니다.
셋째는 욕망의 각성입니다. 책상에 새겨진 단어 하나가 촉발한 내면의 혼란, 그리고 밤의 골목에서의 만남. 이 경험은 스티븐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몰아넣는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더욱 강렬하게 살아있게 만듭니다.
3장에서 스티븐은 이 죄의식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됩니다. 종교적 공포가 그를 덮쳐오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장
장면 1 : 죄 속에서의 일상
2장의 밤 이후, 스티븐의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들은 여전히 그를 뛰어난 학생으로 대했고, 급우들과의 관계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의 내면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그것도 예수회 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되면 스티븐은 다시 더블린의 어두운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낮에는 학교에서 반듯한 학생으로, 밤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 거리를 헤맸습니다. 이 이중적인 삶이 그를 짓눌렀지만, 그는 그 무게를 혼자 감당했습니다.
미사에도 계속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은 할 수 없었습니다. 고해성사를 하지 않은 채로 성체를 받는 것은 또 다른 죄, 더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스티븐은 다른 학생들이 줄을 서서 성체를 받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나는 저 줄에 설 수 없다. 나는 더럽혀진 상태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하러 갈 용기도 없다. 신부님 앞에서 이것을 말로 꺼낸다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매달려 있다.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도, 예전처럼 진심으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입술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딴 곳에 있었습니다. 스티븐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느꼈고, 그 거리가 날이 갈수록 넓어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장면 2 : 피정이 시작되다
그러던 어느 날, 벨베데레 칼리지에서 연례 피정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피정이란 가톨릭에서 며칠간 일상을 멈추고 기도와 묵상, 설교에 집중하는 종교 행사입니다. 학교 전체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했습니다.
피정을 이끄는 사람은 아르날 신부라는 예수회 사제였습니다. 스티븐은 첫날 강당에 앉아 다른 학생들과 함께 신부의 첫 번째 설교를 들었습니다.
아르날 신부는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 영혼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스티븐은 그 첫 설교를 들으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부의 말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신부는 스티븐 혼자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에게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신부님은 나를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러나 왜 이 말들이 전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는가.
장면 3 : 죽음에 대한 설교
이튿날, 아르날 신부의 설교 주제는 '죽음'이었습니다.
신부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지금 이 순간 죄 속에 있는 사람이, 다음 순간 숨을 거둔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 영혼은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죄를 고백하지 않은 채로. 용서받지 못한 채로.
신부는 천천히,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아르날 신부: "형제들이여,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만약 지금 이 순간 내가 죽는다면,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여러분 중에 그 대답을 두려움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강당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스티븐은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습니다.
만약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나는 고해성사를 받지 않았다. 죄 속에 있다. 그렇다면 나의 영혼은…
스티븐은 그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장면 4 : 지옥에 대한 설교, 공포의 절정
셋째 날, 아르날 신부의 설교는 마침내 '지옥'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3장 전체에서 가장 길고 가장 강렬한 부분입니다.
신부는 지옥을 아주 구체적으로, 아주 천천히 묘사했습니다. 마치 청중이 그 장소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것처럼.
지옥의 공간에 대하여
신부는 말했습니다.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이 지구의 한가운데, 엄청난 깊이의 땅 아래에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저주받은 모든 영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너무 가득 차 있어서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수십억 개의 몸이 서로 밀착된 채, 꼼짝없이 영원히 갇혀 있습니다.
아르날 신부: "그 감옥의 크기를 상상해보십시오. 지구보다 몇 배나 큰 쇳덩어리 공이 있다고 합시다. 천 년에 한 번,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 공을 부리로 쪼아 한 알갱이를 떨어뜨립니다. 그 공이 완전히 닳아 없어지는 시간. 그것이 지옥에서의 하루도 아니고, 한 해도 아닙니다. 그것조차 영원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강당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습니다. 스티븐은 손이 땀으로 젖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옥의 불에 대하여
신부는 계속했습니다. 지옥에는 불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불과는 다릅니다. 이 세상의 불은 태우는 동안 빛을 냅니다. 그러나 지옥의 불은 빛이 없습니다. 오직 타오르는 열기만 있고, 완전한 어둠 속에서 영혼을 태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불은 결국 다 태우고 나면 끝이 납니다. 그러나 지옥의 불은 끝나지 않습니다. 영혼은 타면서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타는 고통만이 영원히 반복됩니다.
아르날 신부: "이 세상에서 단 일 초 동안의 화상도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지옥의 불은 그보다 무한히 강한 열기로, 영원히 여러분의 몸 전체를, 눈알 하나까지도 빠짐없이 태웁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내일도, 백 년 후에도, 천만 년 후에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스티븐은 두 손을 무릎 위에 꼭 쥐었습니다. 온몸이 굳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지옥의 냄새에 대하여
신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옥에는 냄새도 있습니다. 지옥에 던져진 모든 저주받은 영혼들의 몸에서 나오는 부패의 냄새입니다. 수십억 개의 썩어가는 몸이 내뿜는 냄새가 그 밀폐된 공간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독한 악취라도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르날 신부: "만약 이 세상에서 죽은 개 한 마리가 골방에서 썩어가고 있다면, 사람들은 코를 막고 그 방에서 달아날 것입니다. 지옥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은 그보다 무한히 끔찍한 냄새 속에서, 달아날 곳도 없이, 영원히 머물러야 합니다."
스티븐의 속이 메스꺼워졌습니다.
지옥의 절망에 대하여
신부는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지옥의 가장 큰 고통은 불도, 냄새도, 추위도 아닙니다. 그것은 절망입니다. 이 고통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완전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절망. 지옥에 떨어진 영혼은 단 한 순간도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탈출의 가능성이 0이라는 것을 영원히 의식하면서 고통받습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것을 영원히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르날 신부: "지옥에 떨어진 영혼은 이렇게 부르짖을 것입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죄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결과다. 그 자각이 영원히,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그를 괴롭힐 것입니다."
강당 안에 완전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스티븐은 눈을 감았습니다. 온몸이 떨렸습니다. 신부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습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죄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나는…
장면 5 : 공포의 밤
설교가 끝나고 학생들은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스티븐은 방에 혼자 누웠지만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신부가 묘사한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공간, 썩어가는 냄새.
그는 일어나 창가로 갔습니다. 밖은 어두웠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스티븐은 이마를 유리창에 갖다 댔습니다.
나는 지금 죄인의 상태다. 만약 오늘 밤 내가 죽는다면. 신부님이 말한 그 장소로 가게 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영원히.
'영원히'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스티븐은 그 단어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백 년. 천 년. 만 년. 억 년. 그리고도 끝이 없다. 단 한 순간도 줄어들지 않는 고통이 그 모든 시간 동안 계속된다.
그는 구역질이 났습니다. 진짜로 몸이 아팠습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습니다. 스티븐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말로 된 기도가 아니라 두려움 그 자체가 기도였습니다.
하느님, 저는 지금 너무나 두렵습니다.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그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지옥을 원하지 않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장면 6 : 고해성사를 결심하다
다음 날 아침, 스티븐은 결심했습니다.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학교의 신부님들에게는 고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들은 스티븐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등생 스티븐 디덜러스가 그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계속 그 신부님들을 마주쳐야 했습니다.
스티븐은 학교 밖, 낯선 성당에서 모르는 신부님께 고해하기로 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학교도 모르는 신부님 앞에서만 이 말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피정이 끝난 날 오후, 스티븐은 혼자 학교를 나섰습니다. 더블린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조용한 골목 안쪽에 작은 성당이 있었습니다. 스티븐은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성당 안은 어둡고 고요했습니다. 고해소 앞에 몇 명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스티븐도 그 뒤에 섰습니다. 심장이 쿵쿵거렸습니다. 앞사람이 들어가고, 나오고, 또 들어가고. 스티븐의 차례가 다가왔습니다.
장면 7 : 고해소 안에서
스티븐은 고해소의 좁은 칸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무 격자 너머로 신부님의 희미한 윤곽이 보였습니다.
스티븐: "신부님, 고해합니다. 마지막 고해 이후로 저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티븐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더듬더듬, 그러나 빠짐없이, 자신이 한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어두운 골목에서의 일들, 반복된 밤들, 죄인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것들.
말하는 동안 얼굴이 불타는 것 같았습니다.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한번 말을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혼자 가슴 속에 눌러 담아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신부님은 조용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신부: "하느님은 자비로우십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다시는 이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용서해 주십니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용기를 내어 고해하러 온 것 자체가 이미 하느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부는 보속(補贖, 죄값을 치르는 기도)을 일러주고, 사죄경을 읽었습니다.
신부: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스티븐은 고해소를 나왔습니다.
장면 8 : 해방의 순간
성당 밖으로 나오자 저녁 공기가 차갑고 맑았습니다. 스티븐은 잠시 성당 앞에 서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달랐습니다. 몸이 가벼웠습니다. 오랫동안 등에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죄책감이 사라지고, 공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평화가 채워졌습니다.
깨끗해졌다. 나는 지금 깨끗하다. 하느님이 나를 용서하셨다.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스티븐은 천천히 걸었습니다. 거리의 풍경이 전과 달리 보였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아름다웠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따뜻해 보였습니다. 세상이 조금 더 선명하게, 조금 더 좋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밤 스티븐은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두려움의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그 골목으로 가지 않겠다. 이 깨끗함을 지키겠다. 하느님 안에서 살겠다.
3장을 읽고 나서
3장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전체에서 가장 종교적인 장이며, 동시에 가장 극적인 장입니다. 아르날 신부의 지옥 설교는 조이스가 의도적으로 아주 길고 구체적으로 써 내려간 부분으로, 독자도 스티븐과 함께 그 공포 속에 빠져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스티븐이 고해성사를 통해 진심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구원의 감격이 얼마나 강렬했는가입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종교 속으로 들어갑니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평화를 느끼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이미 눈치채고 있습니다. 스티븐의 이 열렬한 귀의가 평생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변화의 전 단계인지를. 그 답은 4장에서 드러납니다. 사제가 되라는 권유를 받은 스티븐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바닷가에서 무엇을 보게 되는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4장
장면 1 : 완벽한 신앙인의 삶
고해성사 이후, 스티븐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니, 바꾸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하루에 여러 번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식사할 때는 음식의 맛을 즐기지 않으려 했고, 걸을 때는 편한 쪽 발이 아니라 불편한 쪽 발을 먼저 내딛으려 했습니다.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가도 내색하지 않았고, 불쾌한 냄새를 맡아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습니다. 감각적 쾌락을 하나하나 의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하느님께 바치려 한 것입니다.
눈의 감각도 다스리려 했습니다. 길을 걸을 때 아름다운 것이 눈에 들어와도, 일부러 시선을 돌렸습니다. 여성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고, 매력적인 것들로부터 눈길을 거두었습니다. 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쾌한 음악이 들려와도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습니다.
육신의 욕망이 영혼을 더럽힌다. 나는 몸을 다스려야 한다. 감각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다.
스티븐은 자신의 하루를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아침은 성모 마리아께, 낮은 성 요셉께, 저녁은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각 시간마다 그에 맞는 기도와 묵상을 실천했습니다. 지인들이 봐도 놀랄 만큼 철저하고 규칙적인 신앙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스티븐은 진정한 평화를 느끼기보다는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고해성사 직후에 느꼈던 그 맑고 가벼운 해방감이, 규칙과 규율 속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올바르게 살고 있다. 모든 규칙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왜 마음속이 이렇게 무거운가. 하느님이 기뻐하신다면, 나는 왜 기쁘지 않은가.
장면 2 : 완벽함의 균열
시간이 지나면서 스티븐은 자신의 경건한 삶에서 이상한 균열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드릴 때, 그는 완벽하게 집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잡념이 끼어들었습니다. 기도문을 외는 입술과 달리, 마음은 엉뚱한 곳을 헤맸습니다. 그리고 집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다시 그 기도를 처음부터 반복했습니다. 그러면 또 잡념이 들었습니다. 이 끝없는 반복이 스티븐을 지치게 했습니다.
죄에 대한 감각도 이상하게 변해갔습니다. 처음에는 도덕적으로 명백한 잘못들 — 육신의 욕망, 분노, 교만 — 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거의 모든 것이 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도, 좋은 음악에 감동받는 것도, 재미있는 책을 읽으며 기뻐하는 것도. 감각을 통해 느끼는 모든 기쁨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유혹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살면, 나는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가. 아름다움도,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그것이 정말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그 의문을 스티븐은 애써 눌렀습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믿음이 약한 증거라고, 교만한 마음의 증거라고 스스로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장면 3 : 교장 신부의 부름
어느 날, 벨베데레 칼리지의 교장 신부가 스티븐을 따로 불렀습니다.
교장실에 들어서자 신부는 온화한 표정으로 스티븐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물었습니다.
교장 신부: "스티븐, 나는 자네가 성직자로서의 소명을 느끼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예수회에 입회하는 것을 고려해본 적이 있나?"
스티븐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크게 한 번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부는 계속 말했습니다. 스티븐의 신앙심과 지적 능력, 그리고 그동안 보여준 경건한 삶의 태도를 학교에서 모두 눈여겨보았다고. 예수회 사제는 단순한 성직자가 아니라, 지성과 신앙을 겸비한 하느님의 군사(軍士)라고. 스티븐 같은 자질을 가진 청년이야말로 예수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라고.
교장 신부: "사제는 이 세상에서 특별한 권한을 받은 존재라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죄를 사하고, 성체를 축성하는 권한. 이것은 어떤 왕이나 황제도 가질 수 없는 권한이야. 자네는 그 부름을 느껴본 적이 있나?"
스티븐은 조용히 앉아 신부의 말을 들었습니다. 거절하지도, 수락하지도 않았습니다.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하고 교장실을 나왔습니다.
장면 4 : 사제의 삶을 상상하다
복도를 걸으며 스티븐은 신부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사제. 예수회 신부. 그것이 자신의 길일까.
스티븐은 그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려 했습니다. 검은 수단을 입고,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고, 학교나 성당에서 가르치고, 고해를 듣고, 미사를 집전하는 삶. 질서 잡힌 삶. 예측 가능한 삶. 하느님을 섬기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삶.
그리고 그것이 주는 권위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교장 신부가 말했듯이, 사제는 이 세상의 어떤 권력자도 갖지 못한 권한을 갖습니다. 죄를 사하는 권한. 성체를 축성하는 권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특별한 존재.
한때의 스티븐이라면 그 권위에 매혹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그 삶을 상상하면 할수록 스티븐의 마음속에서 이상한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매혹이 아니라, 서늘한 거부감이었습니다.
사제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평생 검은 옷을 입고, 정해진 규칙 안에서 살고,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의 경계 안에 갇혀 사는 삶. 그 삶 속에서 나는 내가 느끼는 것들을 — 아름다운 것을 볼 때의 전율, 언어가 빚어내는 리듬의 쾌감, 세상의 복잡함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 어떻게 하는가. 그것들을 전부 죄로 여기고 억눌러야 하는가. 평생.
스티븐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질문 앞에서.
그리고 알았습니다. 자신이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삶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도 사랑한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복잡함을, 언어를, 감각을. 그것들을 죄로 여기고 등지는 삶을 나는 살 수 없다.
장면 5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티븐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더블린의 낡은 골목들, 허름한 집들, 지저분한 거리. 스티븐의 가족은 이제 도시의 가난한 구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집이 가까워지자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스티븐의 남동생과 여동생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낡은 옷을 입고, 맨발로, 그러나 크게 웃으며. 어머니가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고, 집 안에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스티븐은 그 장면을 바라보았습니다. 가난하고 시끄럽고 어수선한 가족의 일상. 그러나 그 안에는 살아있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규칙으로 정리된 경건함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삶의 온기.
사제관의 깔끔하고 조용한 방과, 이 시끄럽고 너저분한 집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의 것인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스티븐은 그 순간 한 가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의 길은 종교적 권위의 질서 안이 아니라, 이 복잡하고 불완전한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을.
장면 6 : 바닷가로, 친구들과 함께
며칠 후, 학교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더블린 북쪽 해안의 클론타프 근처였습니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물에 뛰어들어 수영하고 소리치며 놀았습니다. 스티븐도 함께 걸었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물소리가 멀게 들렸습니다.
스티븐은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나는 해변을 걸었습니다. 발 아래 모래가 젖어 있었습니다. 바다 냄새가 났습니다. 하늘은 넓고 파랬습니다.
그때 저 멀리, 물가에서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장면 7 : 바닷가의 소녀
소녀는 물속에 서 있었습니다. 치마를 걷어 올린 채로, 파도가 밀려오면 조금 뒤로 물러서고, 파도가 물러가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놀고 있었습니다. 혼자였습니다.
스티븐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소녀의 모습이 스티븐의 눈에 천천히, 아주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물에 젖은 다리,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살짝 들어 올린 치맛자락. 소녀는 스티븐을 보고는 눈을 마주쳤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바다의 일부인 것처럼.
스티븐은 그 순간 온몸에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2장의 밤에 느꼈던 욕망과는 달랐습니다. 3장의 공포와도 달랐습니다. 그것은 더 크고 더 맑은 무언가였습니다.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아름다움. 죄도 아니고, 유혹도 아니고, 억눌러야 할 감각도 아닌, 그 자체로 완전하고 당당한 아름다움.
이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아야 할 이유다. 이 아름다움을 보는 것. 느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예술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나의 소명이다. 사제관의 기도실이 아니라, 이 바닷바람 속에, 이 소녀의 눈빛 속에, 내 삶의 의미가 있다.
스티븐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소녀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파도와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에게 그 순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장면 8 : 각성의 잠, 그리고 새벽
스티븐은 해변을 떠나 혼자 걸었습니다. 마음속이 이상하게 충만했습니다. 슬프지도, 두렵지도,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충만했습니다.
그는 해변 근처 풀밭에 누웠습니다. 하늘이 보였습니다. 구름이 천천히 흘렀습니다. 파도 소리가 들렸습니다. 스티븐은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이상한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스티븐은 날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처럼, 날개를 달고 바다 위를 날았습니다. 아래로는 푸른 물이 보이고, 위로는 끝없는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는 날 수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가족도, 교회도, 아일랜드도, 나를 붙잡을 수 없다. 나는 예술가다. 나는 창조한다. 나는 날아간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하늘은 이미 저녁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스티븐은 일어나 앉았습니다. 온몸이 가벼웠습니다. 마음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사제가 되지 않겠다. 종교의 질서 안에서 살지 않겠다. 나는 예술가가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언어로 빚어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길이다.
4장을 읽고 나서
4장은 짧지만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입니다. 여기서 스티븐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선택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3장에서 스티븐은 종교 안에서 구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4장의 전반부에서 그는 그 구원을 지키기 위해 완벽한 신앙인의 삶을 살려 합니다. 교장 신부의 권유는 그 정점에서 찾아옵니다. 사제가 되라는 것은 단순한 직업 권유가 아니라, 종교적 질서 안에 완전히 편입되라는 요청입니다.
그러나 스티븐은 거부합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는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감각을 사랑합니다. 언어를 사랑합니다. 그것들을 죄로 여기고 억누르는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님을 압니다.
바닷가의 소녀는 그 선택을 확인시켜주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소녀를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에 스티븐은 자신의 소명을 봅니다. 억눌러야 할 욕망이 아니라, 찬미해야 할 아름다움으로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스티븐이 선택한 길입니다.
5장에서 스티븐은 대학에 입학하고, 마침내 자신의 예술 철학을 완성해 나갑니다. 그리고 아일랜드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5장
장면 1 : 대학생 스티븐, 가난한 아침
스티븐은 이제 더블린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학생입니다. 그러나 가족의 형편은 여전히 나빴습니다. 아니, 더 나빠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엌에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식탁 위에는 묽은 죽이 전부였습니다. 어머니는 말없이 그것을 내밀었고, 스티븐은 말없이 먹었습니다. 집 안 곳곳에 가난의 흔적이 쌓여 있었습니다. 낡아빠진 가구, 곰팡이 냄새, 군데군데 벗겨진 벽지.
아버지 사이먼은 여전히 옛날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습니다. 집안에 실질적인 어른은 없었고, 어머니가 조용히 모든 것을 감당했습니다.
스티븐은 그 모든 것을 보면서도, 이제는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습니다. 이 집도, 이 가족도, 이 나라도, 자신이 끝내 벗어나야 할 세계라는 것을 이미 결정한 사람처럼.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은 여기 있다. 조금만 더. 그리고 나는 떠날 것이다.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에 스티븐은 더블린의 거리를 지나쳤습니다. 생선 장수의 외침 소리, 아침 안개, 강물 냄새,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스티븐은 그 모든 것을 예리하게 관찰했습니다. 그의 눈은 이제 도망치려는 자의 눈이 아니라, 기록하려는 자의 눈이었습니다.
장면 2 : 언어에 대한 각성
대학 복도에서 스티븐은 영문학 담당 교수인 영국인 신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신부가 '방갈로 판자(tundish)'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스티븐은 그 단어가 아일랜드식 영어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인 신부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신부는 자연스럽게, 마치 영어란 원래 영국인의 것인 양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 순간 스티븐은 묘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나는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꿈꾸고, 영어로 글을 쓴다. 그런데 이 언어는 원래 내 것이 아니다. 아일랜드를 지배한 영국이 가져온 언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언어로 나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 언어는 내 입에서 나올 때 이미 조금씩 낯설어진다. 신부님에게 친숙한 단어들이 내게는 낯설고, 내게 친숙한 단어들이 신부님에게는 낯설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같은 세계에 살지 않는다.
이것은 작은 깨달음이었지만, 스티븐에게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언어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언어 안에는 역사가 있고, 권력이 있고, 정체성이 있습니다. 아일랜드인으로서 영어를 쓴다는 것은 이미 무언가 복잡한 것을 안고 가는 일이었습니다.
스티븐은 그 언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빌려온 언어라도 자신이 그것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한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니까.
장면 3 : 친구들, 다양한 목소리들
대학에서 스티븐 주위에는 몇 명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이들이었고, 스티븐은 그들과 토론하고 다투고 어울리며 자신의 생각을 날카롭게 벼렸습니다.
데이빈은 열렬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아일랜드 전통 언어인 게일어를 배우고, 아일랜드 전통 스포츠를 즐기고, 아일랜드의 독립을 꿈꾸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스티븐에게도 민족의 대의에 동참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데이빈: "스티븐, 자네는 아일랜드인이야. 아일랜드가 지금 이 상황에 처해 있는데, 자네 같은 사람이 외면하면 안 되지 않겠어? 우리 민족의 언어를 되살리고, 우리 문화를 지켜야 해."
스티븐: "나는 내가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야. 그러나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규정하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나는 아일랜드인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야."
맥캔은 사회주의적 이상주의자였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 평등, 보편적 형제애를 믿었습니다. 그는 스티븐에게 사회 변혁에 동참하라고 했습니다.
크랜리는 스티븐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영리하고 사려 깊었으며, 스티븐의 생각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크랜리는 스티븐이 너무 외로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이 친구들과의 대화들 속에서 스티븐은 자신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민족주의도, 사회주의도, 종교도, 어느 하나가 스티븐 전체를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장면 4 : 빌라넬, 시를 쓰다
어느 날 새벽, 스티븐은 잠에서 깼습니다. 꿈의 여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언어의 리듬이 맴돌았습니다.
그는 일어나 앉아, 손에 잡히는 종이 위에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빌라넬이라는 형식의 시였습니다. 두 개의 운을 반복하고, 같은 행이 변주되며 돌아오는 까다로운 형식. 스티븐은 그 형식 안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각들 —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여성적인 것에 대한 경외, 창조의 충동 — 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시를 쓰는 동안 스티븐은 이상한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졸리지도,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단어 하나를 고르고, 소리를 맞추고, 리듬을 조율하는 그 과정에서 시간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나다운 상태가 된다. 가족도, 종교도, 민족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언어와 나만이 있다. 이것이 내가 살아야 할 이유다.
시가 완성되었을 때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스티븐은 완성된 시를 다시 읽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자신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장면 5 : 예술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학교에서 스티븐은 친구 린치와 함께 걸으며 자신의 예술 철학을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5장에서 가장 길고 이론적인 부분으로, 스티븐이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들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말로 표현하는 장면입니다.
스티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만의 생각을 펼쳐나갔습니다.
아름다움의 세 가지 조건
스티븐은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완전성(wholeness)**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보는 사람의 눈이 그것의 경계 안에 머물게 하는 힘. 그것이 완전성입니다.
둘째는 **조화(harmony)**입니다. 그것을 이루는 부분들이 서로 어울려야 합니다. 각 부분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전체를 이루는 것.
셋째는 **광채(radiance)**입니다. 스티븐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이것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예술 작품이 그 자체의 본질을 환하게 드러내는 순간. 그것을 바라볼 때 '아, 이것이 바로 이것이구나'라고 느끼게 만드는 그 순간. 스티븐은 이것을 '클라리타스(claritas)'라고 불렀습니다.
스티븐: "어떤 것을 볼 때, 처음에는 그것이 다른 모든 것과 구분된다는 것을 느끼지. 그게 완전성이야. 그다음에 그것의 내부를 보기 시작해. 부분들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있는지를. 그게 조화야.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것이 그것 자체임을,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것임을 환하게 알아차리는 순간이 오지. 그게 광채야. 그 순간이 바로 미적 경험의 절정이야."
린치: "그래서 뭐? 그게 예술과 무슨 상관이야?"
스티븐: "예술가는 바로 그 순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야. 독자나 관객이 작품을 통해 그 세 번째 순간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술의 목적이야."
예술의 세 가지 형식
스티븐은 계속했습니다. 예술에는 세 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는 서정시(lyric)입니다. 예술가 자신의 감정이 직접 표현되는 형식. 나는 이것을 느낀다, 나는 이것을 원한다, 라고 말하는 것. 예술가의 자아가 가장 전면에 드러납니다.
그 위는 서사시(epic)입니다. 예술가의 자아와 그가 그려내는 세계 사이에 거리가 생깁니다. 예술가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가장 높은 단계는 드라마(dramatic)입니다. 예술가의 자아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완전히 살아 숨쉬고, 독자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술가는 마치 신처럼, 자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스티븐: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을 지워낸 사람이야. 그의 작품 안에서 그는 어디에도 없고, 동시에 모든 곳에 있어. 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신이 보이지 않듯이."
린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었습니다. 스티븐의 말은 어렵고 추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에게 이것은 몇 년에 걸쳐 서서히 만들어진 생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혼자 끙끙 앓으며 다듬어온 것들이었습니다.
장면 6 : 에마, 스티븐이 사랑한 소녀
5장에는 에마라는 소녀가 등장합니다. 스티븐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소녀입니다.
에마는 선명하게 묘사되지 않습니다. 독자는 그녀의 외모도, 성격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스티븐이 그녀를 오래 바라보아왔고, 그녀에 대해 시를 쓰고, 그녀를 생각할 때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인다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전차 안에서 스티븐은 에마를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잠깐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평범하고 짧은 대화였습니다. 에마는 밝고 자연스러웠고, 스티븐은 어색했습니다.
전차에서 내린 후, 스티븐은 오랫동안 그 짧은 만남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계속 생각한 것은 에마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에마를 대하는 자기 자신의 어색함, 에마가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상상, 에마를 소재로 한 시의 가능성. 에마는 스티븐에게 실제 인간이라기보다,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했습니다.
스티븐은 이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의 방식이 그러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의 방식이.
에마는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보다 종이 위에 언어로 다가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의 고독이고, 동시에 나의 재능이다.
장면 7 : 크랜리와의 대화, 어머니와 신앙
어느 저녁, 스티븐은 가장 친한 친구 크랜리와 길을 걸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티븐은 크랜리에게 고백했습니다. 어머니가 부활절 미사에 함께 가자고 부탁하셨는데, 거절했다고. 자신은 더 이상 가톨릭 신앙을 믿지 않기 때문에, 믿지도 않는 미사에 참석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크랜리는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크랜리: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
스티븐: "사랑한다고 생각해."
크랜리: "그렇다면 어머니를 위해 미사에 한 번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믿지 않아도 어머니가 기뻐하신다면."
스티븐: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내가 믿지 않는 것에 참여하는 척할 수 없어. 설령 그것이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 해도."
크랜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크랜리: "자네는 두렵지 않아? 신이 존재한다면? 자네가 틀렸다면?"
스티븐: "두렵지 않아.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아. 그러나 나는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을 믿는 척할 수 없어. 그것이 나에게는 더 큰 죄처럼 느껴져."
크랜리는 스티븐을 바라보았습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크랜리: "스티븐, 자네는 지금 모든 것으로부터 혼자가 되려 하고 있어. 교회로부터도, 가족으로부터도, 나라로부터도. 그 고독을 정말 견딜 수 있겠어?"
스티븐: "나는 혼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게 아니야. 내 자신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거야. 그 결과로 혼자가 된다면, 그것은 감수해야 할 대가지."
그날 밤, 스티븐은 오랫동안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사를 거절당한 뒤에도, 그냥 말없이 밥을 차려주고, 말없이 빨래를 했습니다. 그 침묵이 어떤 말보다 무겁게 스티븐을 눌렀습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나의 잔인함이고, 나의 정직함입니다.
장면 8 : 그물, 세 겹의 감옥
어느 날 데이빈이 스티븐에게 다시 민족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스티븐은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스티븐: "나는 섬기지 않겠어. 내가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은 섬기지 않겠어. 그것이 가정이든, 조국이든, 교회든."
데이빈이 반문했습니다.
데이빈: "아일랜드인이 자기 나라를 섬기지 않겠다는 게 무슨 말이야?"
스티븐은 대답했습니다.
스티븐: "아일랜드는 나를 그물로 잡으려 해. 태어날 때부터 세 겹의 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국적, 언어, 종교. 이 세 가지가 나를 이 땅에 붙들어두려는 그물이야. 나는 그 그물을 빠져나갈 거야."
데이빈: "그물을 빠져나가면 어디로 가려고?"
스티븐: "날아서 빠져나갈 거야."
이 '날아서 빠져나간다'는 표현은 스티븐에게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성(姓)인 디덜러스(Dedalus)는 그리스 신화에서 날개를 만들어 미로를 탈출한 장인 다이달로스에서 온 이름입니다. 스티븐은 자신의 이름 안에 이미 자신의 운명이 담겨 있다고 느꼈습니다. 만들고, 창조하고, 날아서 탈출하는 것.
장면 9 : 일기, 떠나기 직전의 기록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스티븐의 일기 형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아일랜드를 떠나기 직전 며칠간의 단편적인 기록들입니다.
일기는 짧고 파편적입니다. 친구를 만난 이야기, 어머니와 나눈 짧은 대화, 거리에서 본 풍경, 문득 떠오른 생각들. 그 속에 스티븐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셨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어디 가느냐고도, 언제 돌아오느냐고도. 그냥 옷을 개어서 넣어주셨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무언가 가슴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크랜리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크랜리는 어젯밤 나를 말리려 했다. 자네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나는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마지막 기록. 소설 전체의 마지막 문장들입니다.
나는 지금 백만 번째 순간을 맞으러 간다. 내 민족의 의식 속에서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벼리기 위하여. 오래된 아버지여, 늙은 장인이여,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언제까지나 나를 도와다오.
'오래된 아버지, 늙은 장인'은 다이달로스를 향한 기도입니다. 자신의 이름 안에 있는 그 신화적 조상에게, 창조와 탈출의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기도.
스티븐은 아일랜드를 떠납니다. 파리로 갑니다. 그리고 쓸 것입니다.
5장, 그리고 소설 전체를 읽고 나서
5장은 스티븐의 완성입니다. 1장의 어린 소년이, 2장에서 욕망에 눈을 뜨고, 3장에서 종교적 공포에 떨고, 4장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하고, 5장에서 마침내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철학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탈출'입니다. 그러나 조이스가 말하는 탈출은 단순히 어딘가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스티븐은 세 가지 그물 — 가족, 종교, 민족 — 을 하나하나 끊어냅니다. 그것은 잔인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눈물, 친구 크랜리의 걱정, 고향의 풍경. 스티븐은 그 모든 것을 뒤에 두고 떠납니다.
그러나 조이스는 이 탈출을 마냥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스티븐은 위대한 예술가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떠나는 것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은 채로. 그 불확실함 속에, 이 소설의 가장 솔직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젊은 예술가는 지금, 막 날개를 펼쳤습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전하는 메시지
먼저, 이 질문이 쉽지 않은 이유
조이스는 독자에게 교훈을 직접 전달하는 작가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숨깁니다. 서술자가 스티븐의 편도, 반대편도 아닌 채로 거리를 유지하고, 독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조이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고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깊은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 메시지 :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스티븐은 소설 내내 수많은 목소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일랜드인이 되어라"고 합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종이 되어라"고 합니다. 친구 데이빈은 "민족을 위해 싸워라"고 합니다. 교장 신부는 "사제가 되어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말없이 "집에 있어다오"라고 합니다.
이 모든 목소리들은 각각 나름의 진실과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도 완전히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은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전부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거부합니다. 전부를.
조이스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역할'을 요구받습니다. 가족 안에서의 역할, 사회 안에서의 역할, 종교 안에서의 역할, 민족 안에서의 역할. 그 역할들을 전부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삶'입니다. 그러나 그 역할들의 총합이 곧 자기 자신은 아닙니다. 진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은, 그 모든 역할을 하나하나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용기와 고독을 요구합니다.
나는 섬기지 않겠다. 내가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은 섬기지 않겠다. 그것이 가정이든, 조국이든, 교회든.
이 말은 반항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엄격한 정직함입니다.
두 번째 메시지 : 예술가는 세상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가장 깊이 바라보는 사람이다
스티븐이 선택한 길은 예술입니다. 그런데 조이스가 그리는 예술가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세상을 등진 고고한 천재'가 아닙니다.
스티븐은 가난한 집의 냄새를 맡습니다. 어머니의 침묵을 느낍니다. 더블린 골목의 생선 장수 소리를 듣습니다. 바닷가 소녀의 눈빛을 바라봅니다. 친구의 걱정 어린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흡수합니다.
조이스가 말하는 예술가의 소명은 이것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추함, 기쁨과 고통, 복잡함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것. 그 과정에서 예술가 자신의 자아는 사라집니다. 마치 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신이 보이지 않듯이, 위대한 예술 작품 안에서 예술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곳에 그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조이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욕망에 맞게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세 번째 메시지 : 종교, 민족, 가족은 아름다운 감옥이 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불편한 메시지입니다.
가톨릭 신앙, 아일랜드 민족주의, 가족에 대한 사랑. 이것들은 모두 그 자체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입니다. 조이스는 그것들을 악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만찬에서 파넬을 위해 눈물 흘리는 케이시 씨의 모습, 말없이 아들의 짐을 싸주는 어머니의 모습, 아일랜드의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려는 데이빈의 열정. 이것들은 전부 진실하고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들은 특정한 방향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기도 합니다. "너는 아일랜드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너는 가톨릭 신자다. 그러므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 "너는 이 가족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이 당위들은 사람을 규정하고, 규정된 사람은 그 규정 밖의 자신을 상상하기 어렵게 됩니다.
조이스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아끼는 것에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가장 힘든 자유이고, 동시에 가장 진짜 자유라고.
네 번째 메시지 : 성장이란 잃어버리는 것이다
소설은 스티븐이 무언가를 얻어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하나 잃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장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습니다. 2장에서 가족에 대한 환상을 잃습니다. 3장에서 종교적 확신을 잃습니다. 4장에서 사제라는 안전한 길을 잃습니다. 5장에서 친구들을 잃고, 어머니를 잃고, 고향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 상실들을 거치면서 스티븐은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집니다.
조이스가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쌓아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아닌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그 과정은 아프고 외롭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 없이 진짜 자신에게 도달하는 길은 없습니다.
다섯 번째 메시지 : 떠나는 것이 사랑의 한 방식일 수 있다
소설의 끝에서 스티븐은 어머니와 친구들과 고향을 두고 떠납니다. 독자들은 이것을 냉정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조이스 자신도 아일랜드를 떠났고, 평생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평생 아일랜드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여기에 조이스의 가장 역설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스티븐은 아일랜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일랜드를 제대로 보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족 안에 있으면 가족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어떤 집단 안에 있으면 그 집단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스티븐은 말합니다. 내 민족의 의식 속에서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만들겠다고. 떠나는 것이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방식의 사랑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조이스가 평생 아일랜드 밖에서 살면서 아일랜드에 대한 소설을 쓴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조이스가 독자에게 건네는 진짜 질문
이 모든 메시지들 아래에, 조이스는 독자에게 하나의 질문을 조용히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자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스티븐의 이야기는 19세기 말 아일랜드 더블린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작동하는 힘들 — 가족의 기대, 종교의 권위, 민족의 요구, 사회의 시선 — 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시대에, 어느 나라에 태어나든, 사람은 이 힘들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조이스는 그 힘들에 굴복하라거나 반드시 반항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묻습니다. 당신은 그 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것을 알면서 선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것이 선택인지도 모른 채, 그냥 떠밀려 살고 있습니까?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진짜 삶이 시작됩니다. 조이스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대해
이 책은 쉽지 않습니다. 처음 읽는 사람이 중간에 덮어버리는 일이 흔하고, 끝까지 읽고 나서도 "뭘 읽은 거지?"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이 책이 평생 잊히지 않는 책이 됩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특별히 울림을 주는 사람들
한 번이라도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물어본 적 있는 사람. 스티븐의 이야기는 결국 이 질문에 대한 한 인간의 긴 대답입니다. 가족이 원하는 대로,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진짜 자신의 삶인지 의심하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스티븐의 방황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종교, 민족, 가족 같은 집단적 정체성과 개인적 자아 사이에서 갈등해본 사람. 한국 사회에서도 이 갈등은 낯설지 않습니다. 가족의 기대와 나의 욕망 사이, 사회적 성공의 기준과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사이. 스티븐이 19세기 아일랜드에서 겪은 갈등은 놀랍도록 지금 여기의 이야기와 닮아 있습니다.
언어와 글쓰기, 혹은 어떤 형태의 예술에 깊이 끌리는 사람. 스티븐이 단어 하나의 소리에 전율하고, 새벽에 홀로 시를 쓰고, 아름다운 것을 바라볼 때 온몸이 반응하는 그 감각. 그것을 알아본다면, 이 책은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청소년기나 청년기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 혹은 그 시절을 뒤돌아보고 싶은 사람. 이 책이 가장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혼란과 통증입니다. 세상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직 모르는 채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그 시절의 감각.
이 책이 주는 것들
첫째, 내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경험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느끼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연한 불안, 설명하기 어려운 소속감의 결여, 아름다운 것 앞에서 느끼는 이유 모를 슬픔. 조이스는 그런 감각들을 언어로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책을 읽다가 "맞아, 이게 바로 그 느낌이야"라고 속으로 외치는 순간들이 옵니다. 그 순간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둘째, 위대한 문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체험하게 해줍니다.
의식의 흐름, 시간의 비선형적 흐름, 상징과 이미지의 반복적 사용. 이것들은 20세기 문학 전체를 바꿔놓은 기법들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후에 읽는 모든 현대 소설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문학이 어떻게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를 발명했는지를 직접 목격하는 경험입니다.
셋째, 고독에 대한 다른 시각을 줍니다.
현대 사회는 고독을 결핍으로 봅니다. 혼자라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스티븐의 고독은 다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공간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혼자 있는 시간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됩니다. 고독이 결핍이 아니라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넷째, 젊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동시에 얼마나 잔인한지를 다시 느끼게 해줍니다.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스티븐의 방황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만납니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고, 그때의 자신이 이해되고, 때로는 그 시절의 자신이 안쓰럽고 때로는 대견합니다. 좋은 소설은 과거를 회복시켜주는 힘이 있습니다. 이 책이 그렇습니다.
읽을 가치가 있는가
있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빠르게 읽으려 하지 말 것.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느끼려고 할 것.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계속 나아갈 것. 그리고 가능하면 앞서 정리한 것처럼 각 장의 내용을 파악한 상태에서 원문을 펼칠 것.
그렇게 읽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한 문장이 가슴에 꽂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문장 하나가, 당신이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순간을 위해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조이스가 이 소설을 쓴 것은 독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가능한 한 정직하게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 정직함이,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살아있게 만드는 힘입니다.
결국 이 책의 가치는 책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난 후에 당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 묻게 되는 질문들 안에 있습니다. 그 질문들이 당신의 것이 되는 순간, 이 책은 값어치를 다한 것입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주요 인물 소개
스티븐 디덜러스 (Stephen Dedalus) : 주인공
소설의 중심인물.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하고 내성적인 청년으로, 어린 시절부터 언어와 아름다움에 남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눈이 나빠 안경을 쓰고 체구가 작았지만, 지적 능력과 글쓰기 재능은 뛰어났습니다.
소설 전체에 걸쳐 스티븐은 가톨릭 신앙, 아일랜드 민족주의, 가족의 기대라는 세 겹의 압력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갑니다. 욕망에 눈뜨고, 종교적 공포에 떨고, 사제직을 거부하고, 마침내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선택합니다. 소설의 끝에서 그는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아일랜드를 떠납니다.
그의 성 '디덜러스'는 그리스 신화의 장인 다이달로스에서 온 것으로, 창조하고 날아서 탈출하는 것이 그의 운명임을 이름 안에 이미 담고 있습니다.
"나는 섬기지 않겠다. 내가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은 섬기지 않겠다. 그것이 가정이든, 조국이든, 교회든."
사이먼 디덜러스 (Simon Dedalus) : 아버지
스티븐의 아버지. 한때는 사회적 지위와 재산이 있었지만, 술을 좋아하고 현실 감각이 부족해 가족의 재산을 조금씩 탕진해가는 인물입니다. 허세가 강하고 감상적이며, 유머 감각은 있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부족합니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로 파넬을 열렬히 지지하며, 크리스마스 만찬에서 단 리오던과 격렬하게 충돌합니다. 코크 여행에서 아들과 함께하지만, 과거의 영광에만 젖어 아들과의 진짜 대화를 나누지 못합니다.
스티븐에게 아버지는 처음에는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점점 '내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의 모습이 됩니다. 아버지의 몰락을 지켜보며 스티븐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갑니다.
메리 디덜러스 (Mary Dedalus) : 어머니
스티븐의 어머니. 소설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인물입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무너져가는 가정을 말없이 감당합니다. 직접적인 대사나 행동보다는, 스티븐의 기억 속 감각으로 주로 등장합니다. 유아기의 스티븐에게 어머니는 달콤한 냄새와 따뜻한 음악으로 기억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소설 후반부에서 어머니는 스티븐에게 부활절 미사에 함께 가자고 부탁합니다. 스티븐은 거절합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아들의 짐을 싸줍니다. 그 침묵이 소설에서 가장 무거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스티븐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 갈등이 그를 평생 따라다닙니다.
단 리오던 (Dante Riordan) : 가정교사
스티븐 가족과 함께 사는 중년 여성으로, 아이들의 가정교사 역할을 했습니다. 광적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1장의 크리스마스 만찬 장면에서 가장 강렬하게 등장합니다. 파넬을 지지하는 사이먼, 케이시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교회 편에서 파넬을 죄인으로 규탄합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얼굴이 붉어지며, 결국 식탁을 박차고 나갑니다.
그녀는 소설에서 종교적 권위와 보수적 아일랜드 가톨릭주의를 상징합니다. 어린 스티븐에게 이 세상이 종교와 정치로 날카롭게 갈라져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각인시킨 인물입니다.
융단 브러시를 두 개 가지고 있었는데, 파넬을 지지하다가 돌아서면서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색인 초록색 브러시를 버리고 갈색만 남겼다는 묘사가 그녀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존 케이시 (John Casey) : 아버지의 친구
사이먼의 오랜 친구로 크리스마스 만찬에 등장합니다. 파넬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입니다.
단 리오던과의 격렬한 충돌 끝에, 파넬의 죽음을 떠올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립니다. 어른 남자가 식탁에서 우는 그 장면은 어린 스티븐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세 손가락을 구부리지 못하는 신체적 특징이 있는데, 이는 아일랜드 민족운동으로 인한 수난의 흔적으로 암시됩니다.
돌런 신부 (Father Dolan) : 기숙학교 교사 신부
클롱고우즈 우드 칼리지의 교사 신부. 냉정하고 권위주의적인 인물입니다.
안경이 부러져 글씨를 쓰지 못하는 스티븐을 게으름으로 몰아붙이고 손바닥을 체벌합니다. 스티븐의 해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벌을 내립니다.
그는 소설에서 부당한 제도적 권위의 상징입니다. 스티븐이 처음으로 맞서 싸우는 대상이 되며, 이 경험이 이후 스티븐이 모든 권위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출발점이 됩니다.
코니 신부 (Father Conmee) : 기숙학교 교장
클롱고우즈의 교장 신부. 돌런 신부와 대조적으로 온화하고 공정한 인물입니다.
체벌의 억울함을 호소하러 찾아온 스티븐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끝까지 들어줍니다. 그리고 돌런 신부에게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스티븐에게 권위가 반드시 억압적인 것만은 아님을 처음으로 보여준 인물입니다.
아르날 신부 (Father Arnall) : 피정 지도 신부
3장에서 등장하는 예수회 사제로, 학교 피정 행사를 이끕니다.
죽음, 심판, 지옥에 대한 길고 구체적인 설교로 스티븐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지옥의 불, 냄새, 절망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스티븐이 고해성사를 결심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합니다.
그는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사제입니다. 그러나 그 충실함이 열여섯 살 소년의 내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공포를 심어놓습니다. 조이스는 이 장면을 통해 종교적 공포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벨베데레 칼리지 교장 신부 : 사제직을 권유한 인물
4장에서 스티븐을 따로 불러 예수회 입회와 사제직을 권유합니다. 이름은 명시되지 않습니다.
온화하고 설득력 있는 인물로, 스티븐의 지적 능력과 신앙심을 높이 평가합니다. 사제는 왕도 황제도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권한을 가진 존재라고 말하며 스티븐을 설득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권유는 스티븐에게 오히려 결정적인 깨달음을 줍니다. 그 삶을 상상하면 할수록 서늘한 거부감이 밀려오면서, 자신의 길이 종교가 아닌 예술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크랜리 (Cranly) : 가장 친한 친구
대학 시절 스티븐의 가장 가까운 친구. 5장에서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영리하고 사려 깊으며, 스티븐의 생각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티븐과 달리 크랜리는 급진적인 선택보다 현실적인 타협을 선호합니다. 어머니의 미사 동행 부탁을 거절한 스티븐에게 "어머니를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스티븐이 아일랜드를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크랜리는 그 고독을 정말 견딜 수 있겠느냐고 걱정합니다. 스티븐은 떠납니다. 크랜리를 두고.
그는 소설에서 스티븐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상징합니다. 현실과 타협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고향에 머무는 삶. 나쁜 삶이 아닙니다. 그러나 스티븐의 삶은 아닙니다.
데이빈 (Davin) : 민족주의자 친구
대학 친구. 열렬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로, 게일어를 배우고 아일랜드 전통 스포츠를 즐기며 아일랜드의 독립을 꿈꿉니다.
스티븐에게 민족의 대의에 동참하라고 꾸준히 촉구합니다. 순수하고 진실한 청년이지만, 그 순수함이 오히려 스티븐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압박으로 느껴집니다.
스티븐이 "아일랜드는 나를 그물로 잡으려 한다"고 말할 때, 그 그물 중 하나가 바로 데이빈이 상징하는 민족주의입니다. 데이빈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스티븐은, 스티븐 자신이 원하는 스티븐이 아닙니다.
린치 (Lynch) : 예술론을 들어준 친구
대학 친구. 5장에서 스티븐이 자신의 예술 철학을 긴 시간에 걸쳐 이야기할 때 옆에서 들어주는 인물입니다.
냉소적이고 솔직한 성격으로, 스티븐의 장황한 이론에 시큰둥하게 반응하거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스티븐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스티븐이 자신의 생각을 더 날카롭게 다듬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크랜리가 스티븐의 감정적 친구라면, 린치는 스티븐의 지적 대화 상대입니다.
에마 (Emma) : 스티븐이 사랑한 소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스티븐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소녀이지만, 독자는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사람인지 거의 알 수 없습니다.
스티븐은 그녀에 대한 시를 쓰고, 전차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오랫동안 그 짧은 만남을 되새깁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직접 다가가지 못합니다.
에마의 역할은 실제 연인이 아닌 예술적 영감의 원천입니다. 스티븐은 에마라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 에마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을 언어로 만들어내는 것에 더 끌립니다. 이것이 스티븐의 예술가적 본능인 동시에, 그의 고독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웰스 (Wells) : 기숙학교의 괴롭히는 아이
1장에 등장하는 기숙학교 급우. 스티븐에게 못되게 구는 아이입니다.
"어머니한테 키스해?"라는 비열한 질문으로 스티븐을 곤란하게 만들고, 오물이 고인 구덩이에 밀어 넣어 스티븐이 열병에 걸리게 합니다.
직접적으로 나쁜 악당은 아니지만, 약자를 괴롭히는 집단의 폭력성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스티븐이 이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몸으로 배우게 만든 존재입니다.
인물들이 함께 보여주는 것
이 소설의 인물들은 각각 스티븐이 거부하거나 수용해야 할 세계를 대표합니다.
| 사이먼 (아버지) | 가족, 민족주의, 몰락 |
| 메리 (어머니) | 가톨릭 신앙, 침묵의 사랑 |
| 단 리오던 | 보수적 종교 권위 |
| 돌런 신부 | 부당한 제도적 권력 |
| 아르날 신부 | 종교적 공포와 지배 |
| 교장 신부 | 종교적 질서로의 편입 |
| 데이빈 | 민족주의의 요구 |
| 크랜리 | 타협과 관계의 삶 |
| 에마 | 예술적 영감, 이상화된 아름다움 |
스티븐은 이 모든 인물들과 부딪히고, 영향받고, 거리를 두면서 자기 자신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서 이 모든 인물들을 뒤에 두고 떠납니다. 그것이 그의 선택이었고, 그의 대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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