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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폴 사르트르의《문학이란 무엇인가》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5. 11. 28.

문학이란 무엇인가 - 글쓰기의 자유와 책임

작가 장폴 사르트르, 그는 누구인가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작가, 극작가, 비평가였습니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자로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로 유명하며,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주제를 평생 탐구했습니다.

파리에서 태어난 사르트르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외조부 밑에서 자랐습니다. 외조부는 독일어 교사이자 작가였고, 그의 풍부한 서재는 어린 사르트르에게 문학의 세계를 열어주었습니다. 사르트르는 자서전 《말》에서 어린 시절 독서에 빠져 지낸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립니다.

명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르트르는 1929년 교수 자격 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했습니다. 같은 해 시험에서 2등을 한 사람은 시몬 드 보부아르였고, 두 사람은 평생의 동반자가 됩니다.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지적, 정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930년대 사르트르는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일하며 글을 썼습니다. 1938년 발표한 소설 《구토》는 실존주의 문학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주인공 로캉탱이 느끼는 존재의 우연성과 부조리함은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사르트르의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1940년 프랑스군 병사로 참전했다가 독일군 포로가 되었고, 1941년 석방된 후 파리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에게 개인의 자유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전쟁 후 사르트르는 지식인으로서 정점에 올랐습니다. 1943년 발표한 철학서 《존재와 무》는 실존주의의 토대를 놓았고, 희곡 《출구 없는 방》과 《더러운 손》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시몬 드 보부아르, 알베르 카뮈 등과 함께 문예지 《현대》(Les Temps Modernes)를 창간하여 '앙가주망'(engagement), 즉 참여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사르트르는 단순히 상아탑에 갇힌 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알제리 독립 전쟁을 지지했고,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으며, 1968년 5월 혁명 때는 학생들과 함께했습니다. 그는 작가가 자신의 시대와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고, 그 신념대로 살았습니다.

1964년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거부했습니다. 그는 어떤 제도도 작가를 제도화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고, 상을 받는 것이 자신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의 일관된 태도였습니다.

말년의 사르트르는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여전히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1980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로 가는 행렬은 20세기 프랑스 지성사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했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문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littérature?)는 1947년 문예지 《현대》에 연재된 후 1948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문학론입니다. 이 작품이 쓰인 1947년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2년, 프랑스는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 중이었습니다. 나치 점령기의 협력과 저항, 그리고 해방 후의 숙청 문제는 프랑스 사회를 깊이 분열시켰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전쟁 중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에 따라 비판받거나 칭송받았습니다.

동시에 냉전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좌파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입장을 정해야 하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사르트르 자신도 이 긴장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에 동조했지만 소련의 전체주의는 비판했고, 서구 자본주의도 문제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르트르는 근본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작가는 무엇을 위해 쓰는가? 문학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예술을 위한 예술은 정당한가, 아니면 작가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실제로 이 작품은 특정 논쟁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습니다. 전쟁 중 나치에 협력했던 일부 작가들은 "예술은 정치와 무관하다"며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반대로 공산당은 모든 문학이 계급투쟁에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사르트르는 《현대》 편집장으로서 이미 여러 논쟁에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료 작가 알베르 카뮈와도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격렬히 토론했습니다. 카뮈는 예술의 자율성을 더 강조한 반면, 사르트르는 작가의 참여를 강조했습니다. 이 차이는 결국 1952년 두 사람의 결별로 이어집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쓸 당시 사르트르는 이미 유명한 소설가이자 극작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학 작품과 철학적 사고를 결합하여 일관된 문학론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문학적 실천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이기도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주로 산문, 특히 소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시나 음악, 회화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나중에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사르트르는 산문이 가장 직접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따라서 참여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믿었습니다.

책이 출간되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좌파는 사르트르가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고 비판했고, 우파는 그가 문학을 정치의 도구로 전락시킨다고 공격했습니다. 순수 문학을 옹호하는 이들은 사르트르의 주장이 예술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후 문학 논쟁의 중심 텍스트가 되었고, '앙가주망'이라는 개념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참여 문학, 저항 문학이라는 개념은 이 책에서 이론적 토대를 얻었고, 1950-60년대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르트르 자신도 이 책의 일부 주장을 수정했습니다. 특히 말년에 그는 언어와 문학의 복잡성에 대해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초기의 낙관주의를 일부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핵심 주제는 그의 평생 신념으로 남았습니다.

글쓰기의 본질을 찾아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문학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다룹니다.

첫 번째 장 "글쓰기란 무엇인가?"에서 사르트르는 문학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그는 우선 산문과 시, 음악, 회화를 구분합니다. 시인은 언어를 사물처럼 다룹니다. 시에서 단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사물입니다. 시인은 단어의 소리, 리듬, 연상을 중시하며, 단어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현실을 창조합니다.

하지만 산문 작가는 다릅니다. 산문 작가는 언어를 도구로 사용합니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투명한 매체입니다. 산문 작가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지시하고,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행동을 촉구합니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중요한 구분을 합니다. 글쓰기는 행위이며, 따라서 자유의 실천입니다. 작가는 쓰면서 선택합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선택이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사르트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비판합니다. 글쓰기가 순수하게 미적인 행위일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본질적으로 의미를 지향하고, 의미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어떤 것에 대해 쓴다는 것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드러낸다는 것은 이미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장 "왜 쓰는가?"에서 사르트르는 창작의 동기를 탐구합니다. 그는 글쓰기가 본질적으로 의사소통의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작가는 고립된 상태에서 자기만족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호소합니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독자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작품은 작가와 독자의 협력으로 완성됩니다. 작가는 쓰지만, 독자가 읽기 전까지 작품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독자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작품을 재창조합니다.

사르트르는 이를 "관대함의 호소"라고 부릅니다. 작가는 독자의 자유에 호소합니다. 독자에게 세계를 보여주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요청합니다. 좋은 문학은 독자를 조종하거나 세뇌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자유를 일깨웁니다.

동시에 작가는 자신이 드러내는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사르트르는 유명한 문장을 씁니다. "침묵도 언어이다." 작가가 어떤 것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선택입니다. 예를 들어 1940년대에 나치의 만행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사실상 방조입니다.

세 번째 장 "누구를 위해 쓰는가?"는 가장 길고 복잡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문학의 역사를 검토하며, 각 시대의 작가가 어떤 독자를 위해 썼는지 분석합니다.

중세 시대에는 성직자들이 주요 독자였습니다. 17세기에는 궁정 귀족이 독자였습니다. 작가와 독자가 같은 계급에 속했고, 같은 가치를 공유했습니다. 18세기에는 부르주아가 새로운 독자층으로 등장했고, 계몽주의 작가들은 이들을 위해 썼습니다. 볼테르나 루소는 부르주아 독자에게 호소하며 봉건 사회를 비판했습니다.

19세기는 복잡해집니다.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계급인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했지만, 그들은 문맹이거나 교육받지 못해 문학 독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작가들은 주로 부르주아를 위해 썼지만, 많은 작가들이 부르주아 가치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예술을 위한 예술" 운동의 배경입니다. 플로베르나 보들레르 같은 작가들은 부르주아 독자를 경멸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쓸 수밖에 없는 모순 속에 있었습니다.

20세기에 와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대중 교육의 확대로 잠재적 독자층이 넓어졌지만, 계급 분열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사르트르는 작가가 모든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정 계급이나 엘리트를 위한 문학이 아니라 보편적 독자를 상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노동자는 문학을 읽을 시간이나 교육이 부족하고, 부르주아는 현상 유지를 원합니다. 사르트르는 작가가 이 딜레마를 인식하고, 진정으로 보편적인 독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네 번째 장 "1947년의 작가의 상황"에서 사르트르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분석합니다. 전후 세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파시즘의 등장과 패배, 식민지의 해방 운동, 핵무기의 등장—이 모든 것이 작가의 상황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사르트르는 작가가 더 이상 방관자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세계는 너무 위험하고,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시대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앙가주망', 즉 참여입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참여가 선전이나 프로파간다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좋은 문학은 복잡성을 보여주고,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작가는 정치적 메시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드러내고 독자의 자유에 호소합니다.

사르트르는 구체적인 주제들을 제시합니다. 1947년의 작가는 식민주의, 계급 불평등, 전체주의의 위협, 기술의 발전과 인간성의 문제 등을 다루어야 합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정치적 주제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근본적 조건들입니다.

동시에 사르트르는 작가의 자유를 강조합니다. 어떤 당이나 이념도 작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는 독립적으로 진실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공산당의 문학관과 사르트르가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공산당은 문학이 당의 노선에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사르트르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사르트르는 또한 형식의 문제도 다룹니다. 참여 문학이라고 해서 예술성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새로운 내용은 새로운 형식을 요구합니다. 사르트르 자신도 소설과 희곡에서 실험적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추구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르트르는 낙관적 전망을 제시합니다. 그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회, 모든 사람이 독자이자 잠재적 작가가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문학은 인간 해방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현실을 직시합니다. 그러한 사회는 아직 오지 않았고, 작가는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써야 합니다. 작가의 임무는 바로 그 불완전함을 드러내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작가와 독자, 그리고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첫째, 자유와 책임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이자 이 책의 중심 주제입니다. 작가는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지, 무엇에 대해 침묵할지—이 모든 것이 책임 있는 선택입니다.

둘째, 문학은 고립된 활동이 아니라 소통의 행위입니다. 작가와 독자는 협력하여 작품을 완성합니다. 이는 문학을 민주적 행위로 만듭니다. 작가는 권위를 가지고 독자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자유에 호소합니다.

셋째, 중립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고 해서 그것이 중립이 되지 않습니다. 침묵도 하나의 태도이며, 종종 현상 유지를 지지하는 것이 됩니다. 사르트르는 작가가 이를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넷째, 참여가 예술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한 참여는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사회적 관심과 미학적 탁월함은 양립 가능하며, 실제로 위대한 문학은 둘을 결합합니다.

다섯째, 문학은 세계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독자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 새로운 의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문학은 우리의 지각을 확장하고 인식을 변화시킵니다.

여섯째, 독자의 능동성입니다. 사르트르는 독자를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로 봅니다. 독자는 텍스트를 해석하고, 의미를 구성하며, 나아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좋은 문학은 독자를 깨우고 움직이게 만듭니다.

일곱째, 역사적 상황의 중요성입니다. 문학은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특정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씁니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진정한 문학적 자유의 시작입니다.

여덟째, 보편성을 향한 지향입니다. 사르트르는 특정 계급이나 집단만을 위한 문학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진정한 문학은 보편적 인간 조건을 다루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아홉째, 언어의 투명성과 도구성입니다. 산문에서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투명한 매체여야 합니다. 지나치게 장식적이거나 난해한 언어는 의사소통을 방해합니다. 명료함이 중요합니다.

열째,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입니다. 사르트르는 모든 비판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습니다. 그는 더 나은 사회, 더 자유로운 인간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문학이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천의 중요성입니다. 이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르트르 자신이 그랬듯이, 작가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으로 옮겨야 합니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행위이지만, 때로는 글쓰기를 넘어서는 행동도 필요합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출간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중요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오늘날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SNS 시대에 글쓰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상업주의와 예술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물론 사르트르의 주장이 모든 면에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의 시와 산문의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언어의 투명성에 대한 믿음은 후기 구조주의자들에 의해 도전받았습니다. 참여 문학이 때로는 도식적이고 교조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역사가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핵심 통찰—작가의 자유와 책임, 문학의 사회적 역할, 독자와의 관계—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특히 가짜 뉴스, 혐오 표현, 정보 조작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고 독자의 자유를 일깨우는 글쓰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쓰는가? 누구를 위해 쓰는가? 당신의 글쓰기는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이 질문들은 사르트르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모든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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